많은 사람들이 하는 통속적 믿음 중에 자연과학은 인문학보다는 공학쪽에 가깝다는 것이 있습니다. 청주에 있는 어느 대학교는 도서관을 중심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 경영학 등이 같은 쪽에 있고 자연과학대학 등은 공대 의대 등과 반대편에 있습니다. 역으로 서울 소재의 어느 대학은 인문대학과 자연과학대학이 같은 건물에 있습니다. 심지어 이 대학교의 서울캠퍼스에는 공대가 없습니다. 어느 쪽의 배치가 학문간의 인접성을 잘 보여주는 것일까요? 많은 이들이 자연과학대학은 공과대학과 가까우니까 서로 인접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서울 소재의 모 대학은 아주 이상하게 건물을 배치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통속적인 믿음과는 상반되게도 자연과학은 공학보다는 인문학에 더 가깝습니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는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도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고 있을까요? 일본은 모르겠지만 대개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융합학문은 현재-미래적인 교육의 이정표 중 하나입니다. 학문의 융합이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을 의미한다면 본래의 의미를 회복하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문리의 통합이 문과 이를 아우르는 사유방식의 회복에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때문에 새로운 형이상학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문과 이를 결합한다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자나 역사학자 등도 모두 과학적 사유방식에 따라 생각하고 글을 쓰고 비평합니다. 자연과학자의 사유와 철학자의 사유에는 추호의 차이도 없습니다. 물론 서로가 지니고 있는 신념의 토대는 다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과학적 사유는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각기 다른 신념이 대화를 막는 방애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발상을 이뤘던 이들의 지적 호기심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역으로 그들의 지적 탐구가 文과 理의 영역을 아울렀기 때문에 그와 같은 업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문의 융합이 일종의 도약을 위한 교육, 즉 창의적 교육과 함께 언급되는 까닭입니다.
/ 송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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