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어머니 편지

꿈자리가 사나와 자다 이러나
맷자 적어보낸다

큰아그집 불났는디 시방 멋들하고있냐는 느그 아부지 호통에 벌떡이러나보니 꿈이구나 밸일이 있건냐 함스르도 맘이 심숭삼숭하다 나는 잘 있다 밥맛도 조코 다리심도 안직은 짱짱하다 장꼬방모탱이 니가 심어논 감나무에 올해 가지가 찌저지도록 감이 열녔다 나무가 저러케 큰것보고 손꼬바봉께 너 집떠난지도 삼십년이 넘었능갑다 억그제 니 생일에 물한그럭 떠노앗다 인자 니 나이도 솔찬하구나 그양반 먼저가분뒤에 어린 느그들대꼬 살아온 풍진세월 생각하먼 참말로 까막까막하다 올가실은 강두메 밭에 고치도 잘되야서 꼬치까리좀 뽀사 보내주고 시퍼도 맘뿐이다 머시냐 아랫동네 딸그만네 시째딸 그 복사꽃가튼 가시네말이다 너 미국간뒤 절에 들어가 스님되얏다더니 엄니 치상치러 왔다며 우리집 들렸더라 니 안부묻더라 짠하고 쪼끔 거시기 하드라 참 도리촌 안심이네는 인공 때 소식 끈긴 작은아부지를 금강산가서 만나고 왔다드라 산사람은 그러케만나는디 느그아부지는 한번가니 영영이구나 아그덜 마니 컸지야 짬나서 댕개가면 조컷다 못오면 사진이라도 보내그라 할말은 당아당아 멀었다만 으쯔께 하고자픈말 다하건냐 산 내가 죽은 양반 한마디에 맘조리며사는 것이 생각해봉께 얼척도업다 으짜든지 몸성해라



먼디서 새복닥 울음소리 들려온다

어느새 느그아부지 도라갈 시간인갑다



---정찬열 '영암에서 온 편지 2'



이 시는 먼 이국땅에 사는 자식에게 보내온 어머니의 편지를 어머니목소리 그대로 옮긴 형식의 시입니다. 그대로 옮겨야 어머니의 삶과 생생한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살려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시인은 생각했을 겁니다. 어느 시인의 목소리보다 진솔하고 생명력 넘치는 시가 된 이유도 어머니의 생각과 정서와 어조가 시인의 그것보다 훨씬 더 훌륭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를 읽다보면 시인의 어머니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풍진세월 속에서 자식들 혼자 키우느라 얼마나 험한 세월을 살았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렇게 키운 자식은 미국으로 건너가 사는지 삼십 년이 넘었는데, 어머니는 아직도 자식 생일이 돌아오면 물 한 그릇 떠놓고 자식을 위해 간절한 치성을 드립니다. '장꼬방모탱이'에 자식이 심어놓은 감나무에 가지가 찢어지도록 열린 감을 보면서 어머니는 자식을 생각하고 세월을 생각하십니다.

어머니 편지 속에는 아직도 꿈에 나타나 호통 치는 아버지가 계시고, 자식과 좋아지내다 스님이 되어버린 딸그만네 셋째딸 의 짠한 안부가 들어 있고, 인공 때 소식 끊겼다 이산가족 상봉 때 다시 만난 이웃동네 사람 소식도 들어 있습니다.

산 사람은 그렇게 만나는데 한번 가고나면 영영 만날 수 없는 이별도 있다는 걸, 나도 남편이 보고 싶어 새벽닭 울 때까지 잠 못 들고 있다는 걸 이렇게 아프게 전합니다. 이 애절하고 진솔한 어머니 편지 받아들고 자식도 새벽닭 울 때까지 읽고 또 읽으며 잠 못 들었지 싶습니다.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잘 익은 사과와 감이 가을바람에 몸을 맡기고 한가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오늘부터 고향을 찾아 내려가는 행렬이 또 가을 길을 가득 메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명절이 되어도 만 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픈 명절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고운 가을 햇살이 찾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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