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연국 충주대 교수

추석, 한국의 전통 명절이다. 농경사회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은 가을 추수를 마무리하며 햅쌀과 햇과일로 조상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차례를 지냈다. 한가위 명절에는 떨어져 지내던 친지들이 고향에 모여서 함께 조상을 기리며 즐겁게 지내는 것이 요즘의 중추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멀리 있던 피붙이들이 고향이라는 구심점으로 모여드는 모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 인간에게 어린 시절의 잊지 못할 추억들을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풍속이다. 명절에 고향으로 모이는 것은 나와 가장 닮은 꼴인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이고 또한 확인이기도 하다. 어찌 기쁘고 즐겁지 않겠는가.

이처럼 당연한 일들을 그리워만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명절 때마다 고향에 이르지 못하고 부모형제간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니 그 심정이야 오죽하랴. 남북한의 이산가족이 그들이다.

일제로부터 한반도가 해방되면서 정치적 야욕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북녘은 공산주의 세력이 들어섰고 그들은 남북의 교류를 차단했으며 이로 인하여 생이별한 가족들이 엄청나게 생겨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한반도를 몰아넣으며 또 수많은 사람들을 헤어지게 만들었다. 전쟁이 끝나고 남북 간에는 휴전선이 그어지며 사람들의 왕래는 불가능하게 고착되었다. 그렇기때문에 남북은 남남보다도 못한 적으로 살아왔다.

현재 자유민주주의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택한 남한은 경제 성장은 물론 문화와 사회의 선진형 성장을 이루었지만 북한은 수백만의 아사자가 생길 정도로 경제는 침체되었고 우리의 동포인 북한주민의 인권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침해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 실정이다.

남한 정부는 끊임없이 북한에 교류와 평화를 주장하고 그들을 달래려 애썼다. 남한은 적십자사를 통해서 끊임없이 시도한 끝에 1985년 9월에 서울과 평양에서 최초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 교환행사를 이끌어 냈다. 이로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리고는 뜸하다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이 있고나서 8월에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이루어졌고 해마다 한두 차례씩 2007년까지 이어져 왔다.

북한은 체제의 동요를 두려워해서인지 상봉 인원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이며 시간과 장소까지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 남한은 그나마 소수지만 만날 수 있는 것을 감사했다. 북한은 일방적으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중단해서 이산가족들의 마음에 또다시 상처를 주었다.

남한의 강력한 요구로 이번의 상봉이 이루어졌고 북한 당국자는 상봉행사라는 호의를 베풀었으니 상응하는 답이 있어야 한다는 태도를 공공연히 나타냈다.

참 뻔뻔하다. 북한이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남한은 풍년농사로 쌀값의 하락을 걱정하는 마당이니 차라리 남은 쌀로 북한 동포를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렇지만 과거 10년간은 북한은 달러를 요구했고 남한정부는 이에 응했었다. 결국 핵미사일 발사라는 세계평화와 남한을 위협하는 무력시위로 돌아왔을 뿐이다.

이제 우리의 북한에 대한 지원은 동포애를 바탕으로 한 식량지원으로 국한해야 한다. 북한의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바뀌지 않는 한 우리 동포의 참담한 생활은 나아지기 힘들 것이다.

지금 이루어지는 100여명의 이산가족 상봉은 남한의 강력한 요구에 대한 북한의 어쩔 수없는 제스처에 불과하다.

이제라도 북한은 한 겨레라는 동포애로 이산가족의 애끓는 슬픔을 위로해야 마땅하다.

이산가족 간의 자유로운 만남과 상호방문을 허용해야 한다. 북한의 지배층은 우리의 북한 동포들이 잘 사는 것이 자신들의 삶을 또한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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