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한남대 교수, 문학평론가

▲ 이규식 한남대 교수, 문학평론가
영상시대 미디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성장한 학생들에게 취미를 물으면 아직 적지 않은 인원이 '독서'라고 대답한다. '컴퓨터'가 대부분이지만 이제 컴퓨터는 취미라기보다는 '생활'이 되었으니 아직 '독서'가 그나마 상위권에 드는 셈이다.

학창시절 그들이 읽은 책은 아마도 수능시험에 나올 확률이 높은 도식화된 작품들일 것이다. 그것도 자유로운 감상과 분석으로 감수성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제, 소재, 구성 운운하는 해부식의 글읽기였고 '밑줄 쫙'의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에서 독서예찬론만큼 당연하면서도 실효성이 거의 없는 외침도 드물지 않을까. 책을 멀리하고 영상에 바짝 다가서는 이른바 '탈활자 증후군'의 확산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왜 책을 멀리할까. 학창시절엔 학습과 학원, 과외에 쫓겨 자유롭고 체계적인 독서가 어려웠고 지도해줄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 '독서 지도사'라는 직업이 있지만 입시라는 현실적인 벽 앞에서 운신의 폭이 그리 크지 않다.

지금 같은 선택형, 암기식의 단답 서술 출제방식으로는 청소년의 바람직한 책읽기 습관은 구조적으로 봉쇄된다. 일부 대학에서 논술고사를 부과하지만 대체로 틀에 끼워 맞추기 식의 준비과정을 거치니 일상속의 독서를 통한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사고와 논리전개와는 거리가 있다.

독서기피증에는 동, 서양이 따로 없다. 카페에 앉아 책읽기를 즐기는 프랑스인들도 영상문화의 확산으로 수많은 카페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다. 물론 대기오염 때문에 노천카페를 기피하게 되고 레포츠와 인터넷 등으로 여가시간이 쏠리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카페나 공원, 지하철에서 책을 읽었던 프랑스인들은 지금 변화하는 중이다.

TV의 보급으로 몰락이 예견되었던 라디오가 전성기에 접어들었다. 타자기나 컴퓨터에 밀려 사라질 줄 알았던 각종 필기도구 역시 더욱 다양해진 디자인이며 기능성으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중이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전자책(e-book)이 머지않아 종이책 시장을 크게 잠식할 것이라고 호언하던 예측은 아직 적중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리 낙관적인 것도 아니다. 최근 대전 최대 규모의 서점이 부도를 맞았다. 부도의 직접원인은 경영자의 책임일 것이다. 이 업체는 그동안 서적을 통한 북한과의 교류를 의욕적으로 꾸준히 추진해왔다. 당장 돈이 되거나 큰 관심을 끄는 일이 아닌 이런 문화 사업은 칭찬받아야 겠지만 넉넉한 자금 확보가 없어 결국 모(母) 기업의 부도로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

기업 경영자의 책임을 묻고 난다면 다음으로는 시민의 문화의식이 거론된다. 몇 시간씩 매장에 앉아 보고 싶은 책을 읽으면서 결국 다시 꼽아놓고 그냥 나오는 고객이 절대다수인 현실에서 서점의 진로는 밝지 않다. 위락시설만이 즐비하고 서점하나 없는 대학가, 문화거리의 상황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실제 필요한 책을 구입하는 곳은 할인이 되고 일정액 이상 구매하면 우송료도 면제되는 온라인 서점, 즉 인터넷을 통하는 행태가 확산되는 한 서점의 운명은 암담하다. 그렇다고 중소 서점들이 어마어마한 초기 구축비용이 필요한 온라인 판매 시스템을 갖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리의 악사들에게 반드시 팁을 주어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그러나 오늘도 숱한 무명 예술인들이 곳곳에서 나름의 활동을 벌이며 그런대로 생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은 조금씩의 성의표시로 돈을 모아주는 행인들의 선의가 있기 때문이다. 커피한잔에 몇 천 원 짜리를 마시면서도 책값 일 이천 원을 아끼기 위하여 오프라인 서점에서 도서구입을 외면하는 '알뜰' 문화인들의 의식전환이 절실하다. 책과 서점의 아름다운 동행, 균형 잡힌 공생을 꿈꾼다.

/ 이규식 한남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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