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학 충주여고 교장

어릴 적부터 자신의 장래 꿈을 분명히 밝히고, 그걸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말하며, 글로 쓰기도 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세뇌시키는 동시에 성취 지향에 몰입시킴으로써 그 실현 가능성을 높인다하여 권장되는 교육 방법이다. 그래서 축구 선수 박지성의 청소년기 일기장이 '대성의 지침' 처럼 회자되기도 하고, 어느 피아니스트의 어린 시절 일화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 뉴욕대학(NYU)의 피터 골비처(Gollwitzer) 교수 연구팀은 이와 같은 일반인들의 상식을 정면으로 뒤짚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뉴욕대학 로스쿨 학생들을 실험 대상으로 한 이 연구는 자신의 꿈을 공개 선언한 학생들의 성취 결과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현저히 저조했다는 데이터를 제시했다. 그리고, 공개 선언과 동시에 이미 꿈을 이룬 것 같은 '섣부른 성취감'이 나태와 쓸모없는 여유감을 불러오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았다.

대부분 청소년들에게는 우상이 있다. 일세를 풍미한 자기 취향의 걸인(傑人)을 선정하여 그를 흉내내려고 매달리기도 한다.

조기 교육 열풍이 보편화 된 지금 이런 추세는 코흘리개 어린 아이에게까지 파급되어 엄마 아빠 숨결로 채워져야 할 그 가슴에 바윗덩이 같은 우상을 차려 앉게 한 경우가 흔하다. 부모는 나름대로 장래의 성취를 예약했다는 듯 뿌듯해 하고, 주위 사람들은 부러워 한다. 하지만 지적·육적 성장 과정을 무시한 이런 현상들이 장차 그 아이의 성장 밸런스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귀를 기울이기는 힘들다.

그래서 일류 유치원을 찾는 학부모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좋은 초등학교 입학권을 따기 위한 밤샘 기다림도 마다 하지 않는다. 어디 그 뿐이랴, 특목이니 외국어 학교니 일류를 찾는 행렬이 바람을 일굴 정도가 된 현실에서, 정상적인 교육이 설 자리는 사막과 같다.

충주시는 영재장학회를 설립하여, 지역 내 인재의 유출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준에 합당한 학생이 지역 내 고등학교로 진학할 경우 수백만 원의 장학금을 수여하는 이 제도가 시행된 후 미상불 지역 내 영재 중학생의 유출 분위기가 멈칫해 진 것은 사실로 보인다.

문제는 그 영재들을 받아 길러내야 하는 고등학교의 임무가 따로 있다는 점이다. 사실 고등학교는 전국적인 경쟁의 장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독특하고도 체계적인 실력 향상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시스템만 구축했다고 성공을 장담할 수 있는가. 가장 큰 과제는 학생 본인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중학교 때 영재로서 각광을 받았다 하더라도 고등학교 교실에서 좀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그 원인이 무엇일까.

나는, 다소 억설이지만 골비처 교수의 '섣부른 성취감'을 그 주된 원인의 하나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전국 단위 경쟁 마당에 나온 고교 1학년은 내적(內的)으로야 충일하다 해도 어설프면서 낯설기 때문에 무언가 조심하면서도 진지한 몸가짐이 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이다. 3학년이 되어서야 세상 물정 비로소 알았다는 듯 다소곳해 지면서 한껏 몸을 낮추고 말수를 줄이는 것이 대부분의 일반계 고교 3학년 현실이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왔다는 섣부른 성취감이 세월을 허송한 것이다.

꿈을 주위 사람들에게 함부로 토설하고 다닐 일이 아니다. 겉폼만 잡다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말고, 입을 욱물고 차근차근 지혜롭게 쌓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어디 말처럼 쉬울까.

그런 의미에서 <에밀>에서 루소가 말한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제자를 추상적인 인간, 즉 모든 인생사에 시달리는 인간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말을 한번쯤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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