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연국 충주대교수

세종대왕이 계시지 않던 세종로에 이번 한글날에 세종대왕 동상이 제막돼 진정한 주인이 있는 세종로가 되었다.

제막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축사에서 "독립일이나 승전일을 기념하는 나라는 많지만 문자를 만든 날을 국경일로 기념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며 정부는 세종학당을 확대 설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말과 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

이 세상에는 6천개 남짓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들 토착어들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으며 문자를 갖고 있지 않은 언어들은 현존하는 사람들이 죽게 되면 동시에 그 언어도 사라지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알래스카에서 쓰이는 '에야크(Eyak)'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마지막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서 에야크라는 언어가 사라졌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의 문화와 특성이 가장 많이 배어있는 것으로 그 언어가 사라지면 그 말과 관련되어진 문화유산도 같이 사라지게 될 것이 뻔하다.

한 언어가 사라지게 되는 큰 이유는 전쟁과 그로 인한 난민 발생 때문이라고 한다. 여러 이유로 고향을 떠나게 된 사람들이 새로 이주한 지역의 언어를 새로 배우며 적응하는 과정에서 모국어를 잊게 되고 결국 기존의 언어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쓰라린 근세사 속에서 우리의 동포들도 만주로, 시베리아로 또 우즈베키스탄으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우리는 지금 그들의 손자들이 한국어를 말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한글을 통해서도 사라지는 언어의 예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말과 전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글, 한글을 가지고 있다. 세계 언어학계는 한글을 인류 역사상 창제 동기와 원리가 밝혀진 유일한 문자이자, 과학적이고 배우기 쉬운 최고의 문자로 꼽고 있다. 1997년에 우리의 한글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고, 유네스코에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졌다. 2007년엔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총회에서 183개국 만장일치로 한국어가 국제특허협력조약 국제 공개어로 채택됐다.

두 달 전에는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 부족이 한글을 공식 문자로 채택했다는 보도로 우리를 들뜨게 했고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이 문자의 수출에서도 한국에 뒤진 것처럼 보도해 그들의 경제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옹색한 가슴의 크기를 느끼게 하기도 했다.

가장 우수한 한글을 사용하는 이 땅에서는 정작 오용되어 출처를 알 수 없는 표기들이 난무하고 세대 간에는 이해할 수조차 없는 문자가 통용되는 혼란을 겪고 있다.

주변에서 사용되는 말이 품위를 잃은 지 오래고, 방송에서 사용되는 말조차 입에 담기 어려운 상스러운 말을 거침없이 내뱉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오죽하면 방송을 하고 있는 방송인들조차도 그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엄격함과 따뜻함을 가진 보통의 아버지 역으로 잘 알려진 최불암씨 마저도 "욕하면서 본다는 나쁜 드라마, 이른바 '막장 드라마'들이 안방을 꿰차는 것이 착잡하다"고 지적하고 있고 수년간 외국에 살면서 방송을 쉬고 있던 개그우먼 이성미씨가 "요즘 방송 미친 것 같아"라고 쓴 소리를 하고 있다.

방송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이상한 말이 바로 유행어처럼 퍼져나가게 하는 마력이 있다. 방송은 품위 있고 격조 있는 아름다운 말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방송 용어가 상스럽고 천해지면 사회도 무질서해지고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

아름답고 품격 높은 말이 방송에서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사회를 아름다운 질서 속으로 이끌고 지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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