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섭〈논설위원〉

정문섭 <논설위원>
촌철살인(寸鐵殺人)은 남송의 유학자 나대경의 저서 학림옥로(鶴林玉露)에 등장하는 사자성어로, "어떤 사람이 한 수레의 무기를 싣고 왔다고 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한 치도 안 되는 칼만 있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한 말에서 유래됐다.

촌(寸)이란 성인 남자의 손가락 한 개 폭을 말하며, 철(鐵)은 쇠로 만든 무기를 뜻한다.

따라서 촌철(寸鐵)은 한 치도 못되는 무기라는 뜻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한마디 말이 수천 마디의 말보다 더욱 효과를 발휘할 때 이르는 말이다.

2004년 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건이 벌어지고 국민들이 차떼기 한나라당에 환멸을 느끼던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구원투수로 등장했던 박근혜 전 대표.

그녀는 당시 천막당사를 차려놓고 지지율 7%대에 불과한 당의 대표를 맡은 뒤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의 쓴소리를 경청한 결과 지방선거와 재보선 선거에서 연전연승을 하며 국회의원을 121명이나 대거 당선시키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차떼기당의 오명을 딛고 국민의 절대적 신뢰를 이끌어 지지율을 50%대로 끌어 올린 것은 박근혜의 놀라운 정치력 덕분이었다.

박근혜는 촌철살인의 대가다. 노무현 대통령이 힘든 상황에서 국면전환을 위해 연정을 제의하자 "국민이 주는 권력이 아니면 받지 않겠다."고 촌철살인의 말을 던졌다.

대선 경선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분패했을 때에도 "깨끗이 승복하겠다."는 말 한마디로 세간을 놀라게 했다.

이회창 총재가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 탈당하여 도움을 요청하자 "정도가 아니다"는 한 마디 말로 이명박 후보에게 결정적인 힘을 실어주었다.

2008년 총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주도로 박근혜의 측근들이 공천에서 우수수 탈락하자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 한마디로 '친박 연대'라는 지지 세력을 탄생시켰다.

촌철살인의 표현은 아무나 한다고 다 먹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 정도(正道)를 걸으면서 함축적인 언어를 구사했을 때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말에도 무게감이 실리는 법이다.

세종시 수정론과 관련하여 여권의 음모론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가운데 입장표명을 요구받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적기에 또다시 촌철살인의 말을 던졌다.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세종시는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박 전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무리 선거용으로 세종시를 추진했다고 해도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특별법 제정 당시 우리도 동의한 것이고, 그때 이미 행정의 비효율성 문제는 따져본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무엇보다 인구의 절반이 모여드는 수도권 집중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세종시 원안 추진은 중요하고 높은 효율성이 있는 것" 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표는 정운찬 총리와 한나라당이 세종시 추진을 백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충청권 주민들에게 말할 수 없는 허탈감을 안겨주는 시점에서 적기에 촌철살인의 해법을 또다시 구가한 것이다.

나는 정치인 박근혜의 이런 모습이 좋다. 허접 쓰레기와 같은 정치인들이 난무하는 난장판 속에서 그래도 원칙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시점에서 세종시는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제시하는 박근혜의 촌철살인 식 화두가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그녀를 다시금 존경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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