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연국 충주대학교 교수

20년 전인 1989년 11월 9일, 분단된 독일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며 통일을 이룬 날이다. 그들의 2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가 베를린에서 성대히 치러졌고 분단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부러운 마음으로 그들의 통일을 축하했다.

과거 서독과 동독을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을 상징하는 커다란 도미노 1천개가 쓰러지는 장관을 연출하고 이어지는 밤하늘의 폭죽은 독일인들의 즐거워하는 모습과 함께 우리의 안방으로 전해졌다.

20년 전 동독 주민들은 자유를 철저히 억압당하고 경제적 빈곤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그들은 자유와 큰 기회를 얻게 됐고 지금은 인접한 프랑스나 영국 등의 국민들과 비슷한 수준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 때 장벽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동구권 국가인 헝가리 정도의 어려움을 지금도 겪고 있을 것이다.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은 "장벽 붕괴의 시작은 폴란드의 조선소로부터 시작됐고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독일 장벽의 붕괴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독일 사람들도 바웬사가 동구권의 공산주의 붕괴를 촉발시켰다고 인정하는 지 이번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2km 가까이 이어진 도미노 붕괴의 첫 번째 장벽도미노를 밀어 쓰러뜨리는 영예를 그에게 제공했다.

독일 통일 20주년 축제 소식을 부러워하는 것도 잠시, 바로 다음날인 10일 연평도와 인접한 대청도 부근에서 북한군의 NLL 침범으로 우리 해군과 교전이 있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행히 우리 해군의 인명 피해는 없고 물적 피해 또한 아주 미미하며 북한 함정은 대파돼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퇴각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연평 해역에서 벌써 세 번째 남북한 간의 교전이 발생했다. 매번 북한군의 도발에 의한 것이었다. 1999년 6월 15일, 이 때도 북한 함정의 선제 사격으로 교전은 시작됐지만 아군의 즉각적인 반격으로 북한군에는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일부 함정은 격침되거나 대파됐으며 수척의 함정은 파손돼 퇴각해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

두 번째는 2002년 6월 29일, 북한은 월드컵 열기로 달아오른 우리에게 찬물을 끼얹는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 함정의 기습 사격으로 시작된 교전에서 우리의 해군 장병 6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고 해군의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침몰했다.

이번 교전과는 달리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우리 함정들은 당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따른 정부의 지침 때문에 북한 함정이 NLL를 침범해 와도 경고하는 정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고 선제사격을 당하고 나서야 반격하는, 손발을 묶어 놓고 나라를 지키라고 한 꼴이었다. 국군의 존립 목적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다.

북한은 같은 민족과 동포애를 내세우면서도 대남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은 자유민주국가가 아니다. 북한 주민들은 언론의 자유가 없으며 자유로운 경제활동도 할 수 없는 정치체제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연명하기 위해 차가운 강을 건너고 이국땅에서 거지처럼 생활하는 탈북자가 되기도 하며 쪽배에 목숨을 의지해 남쪽으로 뱃머리를 향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생각이 법처럼 작용하는 독재사회는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없다.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토록 폐쇄적인 국가가 이 세상에 또 있는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같은 민족이라며 동포애를 말하다가 갑자기 총부리를 들이대고 난사하는 정치집단이 바로 북한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유민주적 평화통일은 독재자의 후의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성숙시켜 나가고 경제력과 국방에서 우위에 있으며 우리 사회가 조화로운 질서 속에서 움직여 갈 때 우리가 원하는 통일을 맞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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