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선 교육평론가

"저보다 세상을 훨씬 더 많이 살아온 교장들에게, 더욱이 이 나라의 풍요로운 오늘이 있게 한 최고의 공신인 평생 교육자들에게, 색안경을 끼고는 오만불손한 용어로 시비를 걸어대는 행태를 바라보노라면 분노가 치미는 것이다…." "미친개가 짖는다고 마냥 버려두기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아…."

"무식한 놈 주먹부터 나온다"는 말이 그르지 않다. 위의 내용이 그런 경우다. 필자의 교직비평을 사적으로 받아들여 다듬어지지 않은 원색적 단어를 내뱉고 있다.

'미친' 어쩌고저쩌고 하는 용어로 보면 흥분한 모습이다. 이성과 논리는 어디에도 없다. 반론이 아닌, 인신공격조로 나오는 전형적인 사례다. 이는 감정의 문제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결과다. 유감이다.

교직적성의 2대 요소는 '자책성'과 '자기통제성'이다. 이 두 가지가 결여되면 교직 적성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위의 기고자는 거취를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교육을 비평하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자식을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로서의 권언(勸言)이다.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필자를 지칭하고 있음에도 이를 밝히지 않은 이유는 짐작이 간다. 밝혔어도 그걸 걸고 넘어갈 수준의 필자는 아니다.

반론 글이든 그 무엇이든 직접 당사자라면 그 이름을 밝히는 것이 글 쓰는 사람들의 상례다. 기고자는 그런 기본적인 상식을 갖추지 못했다. 정정당당히 한병선이란 이름을 밝히고 무엇이 잘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있는 그대로 거론했어야 했다.

말을 제대로 가리지 못한 것도 문제다. 인터넷 공간도 아닌 지면(紙面)에서 "미친개 짖는다"란 말을 쓸 수 있는 정도라면 그 자체가 스스로 자신의 수준을 드러낸 것이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듯, 공적 글에서도 써도 될 말과 쓰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이를 분간하지 못하면 독자를 모욕하게 된다.

거두(巨頭)하고, 다시 짚어보자. 참고지만, 솔직히 필자도 기고자와 같이 저속한 표현을 빌려 쓰고 싶은 마음은 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하여 그냥 평소대로 쓴다.

첫째, 필자의 글쓰기는 도둑질 이야기에 집중되어있다. 소설가 황석영은 "아무리 말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도둑질 이야기는 잘 들어준다. 도둑질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리얼 스토리를 말하면 누구나 재미있게 듣는다는 것이다. 비유지만, 필자도 배운 것이 도둑질밖에 없다. 그래서 도둑질 이야기를 할뿐이다. 차제(此際)에 도둑질 얘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더하자. 원래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했다. 위의 사례가 그런 경우일 것이다.

둘째, 우리 교육의 한계성을 보는 듯하다. 아니, 교직사회의 비극이자 아이들의 비극을 본다. 학교장이 이런 막말을 할 정도라면 사적공간에서는 어떤 모습일지는 보고 듣지 않아도 뻔하다. 문제는 이런 모습들이 한 학교장의 수준을 넘어 교직사회의 사회문화적 특성과 연관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냉소주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바로 '너나 잘 하세요'의 태도다. 이런 냉소주의는 열린 자세나 수용적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비평을 오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런 교장이 있는 한, 교직사회는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상황을 교육현장으로 치환(置換)시켜보면 단박에 답이 나온다.

이런 교장이라면 교사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겠는가? 이런 상황과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이 건설적인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겠는가? 이런 학교에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교육수요자로 인식될 수 있겠는가? 교육주체들 간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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