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재는 기구로 '거울'과 '저울'을 만들어 쓴다. 그리고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평가'를 점검의 기재로 삼는다. 거울과 저울이 필요 없다고 할 사람이 없듯이 평가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교원평가도 마찬가지다. 다만 교육활동은 기준이나 잣대가 간단치 않고 단 기간의 성과로 재기도 위험하다는 것이 문제다.

교원평가제가 오랜 시비 끝에 새해부터 전격 시행될 모양이다. 교과부장관이 법제정여부와 관계없이 3월 강행을 밝힌 데 이어, 교총은 이를 조건 없이 수용하기로 했고, '현행 근평제 개선' 등 선결조건을 내세우던 전교조도 국회 주선의 '6자협의체' 참여를 공식화 했다.

그동안 교원단체들도 '무조건' 반대를 해 왔던 것은 아니다. 당국이 교원평가를 거울이나 저울이 아닌 칼도마로 쓰려고 한다는 의구심 때문에 이의를 제기해 왔던 것이다.

교원평가에 대한 학부모들의 기대는 무능하고 불성실한 교사들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 것이다. 교사들을 주기적으로 심사해 수준 미달자들을 걸러내자는 것이 기본 취지다. 이것은 교육위임자로서 의당 가질만한 요구이기도 하다.

부적격교원 퇴출에 대해서는 교원단체들 간에도 이견이 없다. 성적조작이나 성추문, 폭력이나 비리 관련 등 파렴치 연루자들은 교단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기도 하다.

다만 '성향'을 문제 삼는 경우는 다르다. 일부 단체들의 '전교조 타도'주장은 매카시즘으로 흐를 위험이 있고, 봉건적 교육관을 지닌 교원들에 대한 또 한쪽의 문제제기도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처럼 칼도마로 비칠 소지가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로 '풀어낼' 과제이지, 일방 단죄로 '찍어낼' 일은 아니다.

평가결과 활용에 대한 이견도 만만찮다. 교과부가 명칭부터 '교원능력개발평가'로 바꾸면서 인사에 연계하지 않겠다고 밝혀왔지만, 교원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학부모단체들이 그런 평가는 하나 마나라며 압박을 풀지 않는데다가, 인사연계를 위해 상대평가로 할 경우 자질과 관계없이 일정비율이 하위자가 되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 제도를 먼저 실시한 영·미·일에 전례가 있기도 하다. 인사연계는 또한, 현행 '근평제'가 이미 그렇게 쓰이는 터라 2중적용의 문제도 있다.

보수에 반영하는 것도 그렇다. 결과를 계량화하면 서열이 매겨지게 되고 그러면 보수연동으로 이어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열심히 하는 교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주자는 취지라지만, 그것이 도리어 위화감을 조성해 더욱 중요한 인화와 협력을 깰 우려가 있다. 하위자의 자괴감과 무력감은 물론, 상위자의 경우도 보람보다 더한 강박감에 사로잡힐 개연성이 크다.

바람직한 교원평가는, 교원들이 자기 자질과 수업을 돌아보고 가다듬게 할 '거울'로 삼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울 면이 울퉁불퉁하다면 결과는 고약해진다. 오목거울이나 볼록거울이어서도 안 된다. 입시위주 교육풍토에서 무엇이 주된 기준이 될는지 뻔하다는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모든 교원들을 페스탈로치처럼 되게 하는 데 교원평가제가 유용하다면 더 이상 주저할 이유는 없다. 모든 목사·신부·스님들을 성인이 되게 하는 데 '성직자평가제'가 필요하다면 종교계라고 평가의 성역일 순 없을 것이다. 모든 의사들을 슈바이처처럼 되게 하는 데 '의사평가제'가 묘방이라면 그 또한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쪽에선 그런 말조차 없다.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교원평가라고 그리 만만하랴!

그래서다. 교과부는 전면시행을 하겠다고 하고 교원단체들도 어쨌든 따를 수밖에 없을 테지만, 필자가 구태여 불안을 떨칠 수 없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김병우 충북도 교육위원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