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내건 공약(公約)은 빌 공자 공약(空約)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하는 부류 1순위에는 언제나 정치인이 꼽힌다.

실제로 정치인들은 개인의 이해관계와 정당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과 말 바꾸기를 밥 먹듯이 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자신의 입장을 바꿀 때가 되면 으레 국민을 들먹이고,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끌어다 부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밤 TV로 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세종시에 대한 과거 약속을 두고 부끄럽고 후회스럽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대선을 전후해 무려 12번에 걸쳐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으면서도 한마디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임기 중 편안하게 지나갈 수도 있지만 내가 편하자고 국익을 훼손할 수 없었고, 양심상 수도 분할을 방관할 수 없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얼핏 보면 대통령의 발언은 참으로 국가의 백년대계를 걱정하는 고뇌에 찬 결단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한마디로 이 대통령의 아집일 뿐이다.

사전적 의미의 아집(我執)은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자기만을 내세울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걱정하면서도 국민과의 약속이 얼마나 중차대한 것인지를 잊고 있다.

세종시 문제는 수많은 학자들의 토론과 여야합의, 전 현직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대국민과의 약속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률로 결정된 국가정책이라는 사실이다.

법(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물 수(水)변에 갈 거(去)자가 보여주듯이 물 흐르듯 흘러가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여야 합의로 결정된 사안을 뒤집는 것은 물을 거꾸로 흐르게 하자는 것이다.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고뇌에 찬 결단일 수 있으나 국민들이 보기에는 엄연한 약속위반이자 실정법 위반이다.

약속위반은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만 양산하다 끝내는 국가 사회 전체에 불신풍조만 만연시키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정권이 바뀔 경우 이 대통령의 국가정책들도 백지화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충북대 최영출 교수도 1일 세종시 수정안 추진과 관련, "선거가 끝난 뒤 정책을 바꾸고 대통령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전체가 냉소주의에 빠지고 정치를 후퇴시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완구 충남지사가 도지사직 사퇴의 뜻을 내비쳤다.
이 지사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를 추진한다는 약속을 믿으라고 설득해 온 자신이 결과적으로 도민을 속인 셈이 됐다.'고 심경을 피력했다.
이 지사는 "국가경영에 있어 철학과 가치가 다르고, 국가 구성원 상호 간의 이해관계와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것을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합의한 '법'과 사회적 자본인 '신뢰'라는 두 축에 기초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행정을 잘하고 외자유치도 잘하고 기업유치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영혼, 자존이 무너졌을 때는 그 어떤 것도 그 앞에서는 조그만 것이 된다."고 말해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도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지사직을 사퇴하겠다는 이 지사의 선택이 최선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공인으로서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려는 이 지사의 자세는 높이 살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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