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인플루엔자로 입원하는 교사들이 늘어나자 대체 교사를 모시지 못해 고민하는 도시의 대규모 초등학교에 정년으로 퇴임한 할머니 선생님이 6학년 남자 반을 2주간 담임하기로 했다.

재직 시 6학년 담임을 여러 번 해보았지만 남자 반은 몇 번 안 된다. 서른 너더댓 명과의 첫 만남부터 수라장이다. 반장의 경례 구령에도 인사는 않고 장난을 친다. 주름이 많은 할머니라서 눈에 안 차는 모양이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부처도 마음을 연다는데, 안 되면 될 때까지 해보리라.

모든 어린이가 다소곳이 머리 숙여 인사할 때까지 되풀이 한다. 한참을 지나서야 자기들끼리 서로 눈치를 주면서 주의를 주자 인사가 제대로 이루어 진다.

老교사는 그때서야 첫 만남의 인사를 하고, 짧은 기간이지만 열심히 노력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보자고 약속을 하고 수업시간에 하는 인사의 의미를 설명했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다.

수업 중에 바람직하지 못한 언행을 하는 어린이가 있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열심히 잘하겠다는 다짐을 받은 후에 수업을 진행한다. 늙은이가 노망 떤다고 학부모들로부터 항의성 뒷말이 나올 수밖에.

교과학습도 모든 학생들의 완전한 이해를 목표로 삼았으나 기초 기본 학력이 부족해 내용을 이해 못하는 어린이가 있어 그 부족한 부분부터 다시 가르친다. 아이들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아주 못마땅해 하는 눈치다.

친구들과 떠들기는 잘해도 책 읽은 내용의 이야기는 못해 방과 후엔 개별 독서지도를 한다. 구구단을 모르니 곱셈과 나눗셈을 못한다. 방과 후에 가르쳐준대도 학원에 간다며 빠져나간다.

할머니도 E-mail이 있어요? / 샘은 아픈데 없어요? / What's your favorite song? / 우리 학교엔 왜 왔어요? / 몇 살이세요? / 누구하고 살아요? / 왜 존대 말을 해요? 그래도 "요"는 붙인다.

단기 근무자라고 소개가 되지 않았으니 담임 학급의 학생들 외에는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선생님들과도 자주 접촉하지 않으니 잘 모를 수밖에. 그런데도 어떤 어린이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욕설도 많이 하고, 장난도 끝이 없고, 툭하면 싸운다. 책상 주변은 지저분한데 목걸이와 귀걸이도 했고, 커플링이라며 반지도 꼈다. 명품 옷과 신발에 부모와 여친 자랑은 잘해도 학교와 선생님 자랑은 없다. 그들 중엔 꼬옥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아주 예절바른 착한 어린이도 있다.

내게 없는 것에 대한 상대적 박탈에는 분개하면서도 내 능력의 부족함에는 무관심이다. 이기적이고 욕심도 많고 봉사정신이나 책임감도 희박하다. 자기는 아는 체도 안하면서 친구더러는 모르는 척한다며 따돌린다.

할머니 선생님은 지난 날 이 애들의 부모에게 인성교육은 아주 잘 못한 것 같아 여간 죄스럽지 않다. 이들의 장래는 누가 바로 잡아줄 것인가!

아침과 저녁으로 짧지만 생활에 꼭 필요한데 알면서도 잘 실천되지 않는 '생활의 기본예절'을 영상을 통해 지도한다. 유치하다고 쑥스러워하면서도 며칠이 지나니 친절한 예절생활이 자연스레 시작된다. 어떤 학부모는 아이들 나쁜 버릇 고쳐줘서 고맙다고 학교장에게 전화를 했단다.

의사의 허락을 받아 신종 플루에 감염돼 격리치료를 받고 있는 담당학급의 어린이와 담임교사의 문병을 한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가족의 면회도 제한되어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었는데 처음 보는 할머니가 담임교사라면서 아이들과 같이 문병을 오니 무척 반가워한다. "할머니 선생님, 고맙습니다."

얼굴이나 옷맵시 가꾸듯 말씨를 잘 다듬어야 멋있는 남자가 될 수 있다면서 잘못된 말씨를 잡아주고, 사람의 명품은 다른 사람보다 차별화된 인격을 갖추는 것이므로 각자의 소질대로 능력을 길러 품격을 높이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성실하고 알찬 하루 생활의 실천을 스스로 다짐하게 한다.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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