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선 교육평론가

경영에서 리더십은 중요하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담임교사든 학교장이든 리더십에 따라 학급이 달라지고 학교가 달라진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교육현장의 리더십은 네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다듬어진 연구는 아니지만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스스로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리더다. 이들의 사전에는 모르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구성원들의 자율능력을 원천적으로 믿지 않는다.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와 애정도 없다. 일의 속도와 완급을 조절할 줄도 모른다. 이들은 앞장서서 '나를 따르라'를 외치는 것이 특징이다. 좀 과하게 말하면 '제 멋대로 식'이다.



◆리더십의 기본은 소통

이 유형의 문제점은 의사소통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이들은 한결 같이 일방통행을 좋아한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파쇼적인 행동양식을 나타내기도 한다. 특징은 또 있다. 교육활동을 행정의 부속물쯤으로 여긴다. 말끝마다 행정이란 말이 들어가지 않으면 일이 되질 않는다. 오해는 마시라 정당한 지침과 매뉴얼에 의한 일처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뛰어넘는 불필요한 과잉, 과대포장을 능력으로 오해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

둘째, 완전 방임형 리더다. 이들은 마지못해 회의에 참석한다. 문은 항상 닫아놓는다. 구성원과 부딪히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겨 버린다. 학교가 어떻게 되든, 학급이 어떻게 되든 별 관심이 없다. 교육을 자신들과는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도 당연히 없다. 이들의 관심은 지극히 사적이거나 외부에 있다.

그렇다고 엄격한 통제가 더 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더 큰 오해다. 굳이 방임과 통제를 비교한다면, 엄격한 통제보다는 방임이 더 낫다. 아이들은 통제에 의해서보다 자율과 방임에 의해 더 많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사적(私的)인 얘기지만, 이런 이유로 필자도 자식양육은 방임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렇다고 완전한 방임은 아니다. '울타리 있는 방임', 아이들의 '자율능력을 믿는 방임'이다.



◆성공법칙의 역설적 의미 살펴야

셋째, 호감을 주지 못하는 리더다. 면(面)의 생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업무능력이나 성취도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인간관계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얘기다. 이들은 구성원 상호간은 물론 학생들, 학부모들에게도 무례한 태도를 보인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그들만의 부정적인 성공법칙, 즉 폭력법칙을 잘 꿰고 있다. 이런 것이다. '공개적으로 망신주기', '특정인 왕따 시키기', '자기 사람만 심어 놓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독설 퍼붓기', '잘못은 상대 탓으로 돌리기'다.

조직 구성원들보다 자신의 보신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다. 성공을 위해 윗사람과 무조건적인 주종관계를 맺어온 것처럼 구성원에게도 똑같이 요구한다. 파괴적인 인성으로 구성원들의 존경과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넷째,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하는 리더들이다. 이들은 공적인 것이 무엇인지, 사적인 것이 무엇인지 분별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 결과 일의 핵심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감추기 위해 포퓰리즘(populism)을 추구하는 경향도 강하다. 특히 이 유형의 압권은 사적인 일에 공적 인력을 동원하는 경우다. 얼마 전 한 자치단체장이 직원들을 동원해 자신의 텃밭을 가꾸고 집안일을 돕게 했던 사례와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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