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만 청원군 주민생활과장

임진왜란은 조선건국(1392년) 200년이 되던 해인 1592년에 발생해, 당시 조선, 중국의 명나라 그리고 일본 3국이 치른 국제전쟁으로 우리나라는 국가존망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당시 일본 무사집단은 최강의 군대였으며, 일본 무사들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조총으로 무장하게 되자 더할나위 없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변해있었다. 이러한 흐름을 알지 못했던 조선은 일본이 침략을 하자 20일만에 수도인 한양을 일본에 내주고 말았다.

임진왜란이 막을 내린 해는 1598년이며 이로부터 38년 후인 1636년에 청나라가 일으킨 병자호란이 발생한다. 조선의 위정자들이 당시 중국의 명나라는 기울고 만주에서 청 세력이 강력해지고 있는 정세를 읽지 못해서 당한 침략으로 조선은 청에게 치욕적인 항복을 했다.

구한말 일본은 서양문물을 받아드려 영국을 비롯한 세계대제국과 겨루는 국가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리끼리 사고에 몰두해 있던 조선은 총한방 쏘지 못하고 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면 국가가 망하거나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은 위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지난 1995부터 도시와 주변의 군지역이 통합하여 도농통합시가 탄생을 하게 되었고 전국적으로 40개의 도농통합시가 존재한다. 청원과 청주도 통합이 추진되었으나 1994년과 2005년에 무산된 것은 양 지역주민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며 지금 이순간도 양 지역의 현안으로 남아있다.

통합이 지역발전에 걸림돌이었다면 기존 통합된 지역의 주민들이 전국적으로 연대 또는 연합해 분리운동을 전개하는 시민조직이 탄생했을 것이나 그런 조직이 있다는 사실을 접해본 적이 없다. 이는 무엇을 반증하는 것일까?

청원·청주 통합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그동안 논란이 되어 왔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언급을 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통합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다.

통합이 될 경우 국가예산이 10년 동안 2천억원이 넘게 지원되고 구청이 청원군지역에 생길 것이라 하고,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말들이 지역에서 회자되고 있다. 통합은 청원군지역에 예산이 얼마 지원되고 4개 구청이 생기느냐 안 생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통합 자체가 가져올 큰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방행정은 주민과 땅을 대상으로 행정을 펼친다. 만약 통합시가 탄생하면 주민과 땅을 대상으로 행정이 추진될 때 빈공간인 광활한 땅은 청원군 지역에 있는 것이다. 땅이 변하면 지역이 변하고 발전한다. 단적인 예가 오창과 오송지역이다.

오창과 오송의 변화는 주병덕 지사 때부터 충북도가 충북을 발전시키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과연 청원군의 역량만으로 오늘날의 오창과 오송의 변화를 가져올 수가 있었겠는가? 청원군이 주도해서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곳은 42만평의 오창제2산업단지 불과하다. 이러한 사실이 지역과 행정의 역량이 커져야만 된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시대적 변화와 흐름에서 청원은 15년동안 비켜왔으며 지금도 진통을 겪고 있다. 일찍이 경부선이 지나가는 대전은 200만이 육박하는 도시로 성장했고 철도를 못지나가게 했던 청원과 청주는 천안보다 못한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

청원과 청주의 100년 대계를 위해서는 세종시도 중요하지만 통합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시대적 변화를 읽지 못하면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다. 청원의 100년 대계를 위해 큰 변화를 바라보아야 될 것이다. 통합에 대한 해답은 주민생활 현장에 있다. 현장에 있는 주민의 목소리를 들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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