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연중의 발명 세상 <36>


요즘엔 제철이나 산지에 구애받지 않고 갖가지 음식물의 제 맛을 즐길 수 있다. 이같이 '미각의 향연'을 마음껏 누리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식품가공 및 보관기술의 발달이 가져다 준 것이다.

식품가공 및 보관술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발명품은 무엇일까. '병조림'이다.

발명가는 프랑스의 작은 식당의 요리사였던 아페르다.

프랑스 파리 변두리에서 가난한 채소장사의 아들로 태어난 아페르는 어릴 적부터 학교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식당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온갖 허드렛일과 더불어 심부름꾼으로 잔뼈를 굵게 한지 10년, 비로소 아페르는 흰 옷을 입은 요리사가 됐다.

몇 년의 세월이 더 지난 1809년. 당대의 영웅인 나폴레옹이 1천만 프랑과 자신의 훈장을 내걸고 '식료품 저장과 포장방법'을 공개 모집했다.

그때만 해도 오랜 항해가 불가피한 선원이나 군인들을 위한 식품을 썩지 않게 잘 보관하는 것이 큰 골칫거리였다.

프랑스 식품업계는 이러한 공개모집 소식으로 크게 술렁거렸다. 1천만 프랑의 상금도 엄청났지만 나폴레옹 훈장은 공작의 작위에 버금가는 명예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아페르는 '마침내 나에게 절호의 기회가 왔구나. 당선은 내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페르는 자신에 넘쳐 있었다. 이미 오랜 요리사 경험을 통해 ▶음식은 찌거나 삶은 것이 날 것보다 덜 상한다, ▶음식을 넣고 뚜껑을 닫아놓으면 변질이 잘 안된다, ▶음식이 상할 기미가 보일 때는 한 번 더 끓이면 오래간다는 등의 생활속 노하우를 체득하고 있던 그로서는 전혀 낯설지 않은 주제였던 것이다.

1천만 프랑을 향한 병조림 프로젝트는 착착 진행됐다. 우선 음식을 끓여서 여러 개의 병에 집어넣고 코르크마개로 꼭 닫은 후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양초를 녹여 밀봉했다. 이어 밀봉한 병을 솥에 넣고 한 번 더 끓여냈다.

아페르가 원했던 결과가 나타났다. 음식물이 처음 그대로의 신선도와 맛이 오랫동안 지속된 것이었다.

즉시 병조림을 들고 나폴레옹 부대를 찾은 아페르 앞에는 1천만 프랑과 나폴레옹 훈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활 속 경험의 지혜를 십분 살린 이 발명은 작은 식당의 요리사 아페르를 평생 부와 명예를 누리도록 만들었다. /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겸임교수 / 삽화: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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