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성 농협청주교육원 교수

설날이 이제 코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올해는 발렌타인데이와 같은 날이다. 그래도 추석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최대명절인 설날이니 내심 설날의 한판승(?)이 기대가 되나,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오전에는 세뱃돈만 챙기고, 오후에는 연인, 친구들에게 초코릿을 준다고 가족과 친척들을 외면하고 외출할지 모를 일이다.

설이란 '낯설다' 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설날은 일제 강점기에 양력이 시행되면서 신정에 빗대어 구정(舊正)이라고 한 때 격하된 이후 그 의미가 점차 퇴색되어가고 있다.

이미 2010년 새해는 12분의 1이상이나 지나갔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남편들에게는 온가족이 모처럼 만나는 날로, 며느리들에게는 음식마련과 뒷정리에 짜증나는 날로, 아이들에게는 세뱃돈 받는 날로 여겨지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하늘의 천문현상을 보고 24절기를 만들었다. 물론 24절기는 음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농경의 주기는 세시풍속의 주기와 맞물려 생활의 주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농업의 경제적 비중이 낮아지고, 생활습관마저 서구화 됨에 따라 우리 조상들의 세시풍속은 점점 잊혀져 가고, 발렌타인데이 등 외국에서 전해져 온 풍속과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등 기업의 마 케팅 전략에 따라 생겨난 정체불명의 날들이 우리의 세시풍속을 대신 하고 있다.

이미 대형 유통매장에서는 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 초코릿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며, 우리의 자녀들은 다가온 설날보다는 발렌타인데이를 어떻게 치를까에 더 신경을 쏟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와 소박했던 우리 조상들의 생활의식은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미신으로 격하되거나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고로 인식, 전략 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기만 하다.

21세기를 컨버젼(Conversion)의 시대라고 한다. 휴대폰에 mp3, 디지털카메라, 인터넷, DMB까지 하나의 상품에 다양한 기능의 융합은 너무나 일반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한식의 세계화가 음식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세시풍속과 문화도 현재 우리의 몸에 맞게 새옷으로 단장해야 한다.

물론 전통을 존중해야 하지만 고집스럽게 원형만을 주장하며 어떠한 변형과 개조도 허용하지 않는 정통주의(Orthodoxy) 의 오류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디지털로 무장한 자녀들에게 몸에도 맞지 않는 아날로그 문화를 무조건 수용하라는 것도 무리이다. 논어에 '知之者가 不如好之者요 好之者가 不如樂之者니라'라는 말이 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 다. 지금까지 우리의 자녀들은 전통문화를 학습을 통해 머리로는 어렴 풋이 알고 있지만 생활 속에서 몸으로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 이유는 흥미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것을 남의 것인양', '남의 것을 우리 것인양' 마냥 속이며 살 수도 없다. 문화강대국만이 선진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농업 농촌의 문화를 다시금 새롭게 정립하려는 범정부차원의 시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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