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섭 논설위원

'한번의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에 앞서 29번의 가벼운 사고와 300번의 긴장되는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1:29:300의 하인리히 법칙을 처음에 발표한 하인리히는 미국 해군장교 출신이다.

퇴역 후 보험회사의 감독관으로 취업한 그는 고객들과 관련된 5만건의 사고를 골똘히 연구하다 이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천재지변과 같은 대형사고도 이에 앞서 반드시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한다.

즉, 대형사고가 나기 전에는 비슷한 중간 형태의 사고들이 29번 발생하고, 그 전에는 아주 경미한 사고들이 300번 정도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옥상에는 76톤가량의 무거운 설비장치와 부실 시공된 철근, 금이 갈라지고 있는 천정상태를 외면한 허술한 관리 등 300개의 잠재적 위험요인과 이러한 건물의 균열, 붕괴 위험을 경고하는 29건의 전문가 진단은 내려졌었다.

그러나 경영자는 이를 무시했고 결국은 백화점 붕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아 501명이 건물더미에 깔려죽고, 937명이 다치고 관리자 6명이 실종하는 대형 참사를 맞는다.

아이러니컬하게 이번에는 서해 바다에서 해군함정 천안함 초계정이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해 온 국민을 충격 속에 빠뜨렸다.

아직도 배가 침몰한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해군함정이 어뢰와 기뢰 하나 탐지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침몰한다면 과연 우리의 바다를 안심하고 맡겨도 되는 건지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든다.

세계적인 IT 강국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해군함정이 이처럼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고 통신이 두절되면서 선장은 휴대폰으로 사고소식을 상부에 알렸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기가 찬다.

지금은 생존자를 찾아나서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그러나 칠흑처럼 시계(視界) 제로인 바다와 얼음처럼 차가운 수온, 거센 조류, 깊은 수심은 구조 활동을 가로막으며 유가족을 몸부림과 실신, 탈진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구조 활동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사건이 재발했을 때 신속하게 위기에서 탈출하는 위기관리 능력을 갖추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할 때 침몰시 부유물이 거의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전문가들은 폭발물에 의한 침몰보다 제작과정 상의 치명적 결함이나 암초에 부딪쳐 두 동강이 났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수색작업과 사고경위도 의문투성이긴 마찬가지다.

초기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사고에 대한 의혹들이 눈덩이처럼 인터넷을 통해 번져나가는 것도 큰 문제다.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원칙은 인정을 하는 것이다.

대형사고가 발생한 사실을 먼저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정한 뒤 필요한 구호조치를 취하고 협력을 구하는 일이다.

특히 언론에는 숨김없이 있는 정보를 정확하게 그대로 제공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나 추측성 기사, 유비통신,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도 위기를 관리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차가운 바다 속에 영문도 모른 채 심야에 갇혀 고통을 겪고 있을 함몰된 장병들과 먼발치에서 끼니까지 거르고 피눈물을 흘리며 구호과정을 지켜보는 유가족들의 흐느낌이 온 국민을 슬픔의 심연으로 몰아가고 있다.

오늘따라 아침부터 쉬지 않고 주르륵 주르륵 내리는 비는 천안함 초계정호에 함몰된 유가족들의 눈물까지 겹쳐져 가슴속에 황량함만 더해주고 있다.

기적같은 기쁜 소식이 얼른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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