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아 진천 삼수초 교사

필자 학교 어느 반에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문제 내용은 '염소와 병아리의 수를 합치면 ○마리이고, 다리 수를 합치면 ○개이다. 염소와 닭의 수를 구하시오.' 라는 유형이었다. 학급 아이들이 조용히 문제를 풀고 있을 때, 한 아이가 짝꿍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선생님! 얘, 너무 심해요."

"무슨 일 있니?"

"참, 글쎄. 병아리 다리가 몇 개냐고 물어요. 병아리 다리가 몇 개인지도 모르나?"

질문을 한 아이는 평소 또래에 비해 이해력이 떨어지고, 급우들도 가끔 그 아이에게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곤 했다. 주변 아이들도 한심하다는 듯 '우' 소리를 냈다.

이때 담임교사가 "어머, 그건 유치원생도 다 알겠다."라며 핀잔을 주었다면, 그 아이는 담임교사를 볼 때마다, 모르는 수학 문제를 풀 때마다, 고개를 숙일 것이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아이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기다렸다.

그때 누군가 "바보, 그것도 몰라. 2개잖아."라며 그 아이를 흘겨보았다. 그러자 그 아이는 주변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 지, 자신이 전혀 몰랐던 사실을 알았다는 말투로 신기한 듯, "그럼, 병아리가 걸어 다닌단 말이에요?" 학급 아이들의 비웃음이 일제히 그 아이에게 꽂혔다. 그 때 담임교사의 더 큰 웃음소리가 학급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하하. 수학 시간이 국어 시간이 됐네. 재미있는 동시 나왔다. 우리 반 ○○는 천재 시인인가 봐."

담임교사의 한 마디에 그 아이는 씩 웃었다. 그 후 아이는 국어, 특히 동시가 나오는 시간이면 미간을 찌푸리며 열심히 시 쓰기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필자의 학급에도 한 아이가 있었다. 또래에 비해 참을성이 없고 주먹이 먼저 나가는 '싸움짱'이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심지어 하교 후에도 그 아이 주변은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필자 역시 그 아이만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 나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 아이에게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들곤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가 또 싸웠대요. ○○가 먼저 시작했어요."

화장실로 들어서는 필자의 뒷꼭지에 대고 한 아이가 소리쳤다. 그 아이는 다음에 이어질 상황에 대해 미리 대비하는 자세를 취했다. 몸을 잔뜩 움츠리고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 녀석, 또 친구와 싸우면 어떻게 하니?"라는 말이 평소 필자의 대응 방법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아이 옆에서 당당히 서 있는 이른 아이를 흘겨보며 "○○가 먼저 그랬다고? 그럴 리 없어. ○○가 먼저 시작했어도 이유가 있었겠지?"라며 무심한 척 지나갔다.

그때부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이 태도는 조금씩 바뀌었다. 아이가 나를 보는 시선에 따뜻함이 배어 있었다. 필자 역시 아이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감싸주었다. 어느새 아이를 볼 때마다 화난 표정이던 필자의 얼굴도 한결 부드러워 있었다.

말 한 마디는 천 냥 빚만 갚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바뀌게 할 위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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