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문학평론가

봄이 깊어가면서 크고 작은 지역축제, 문화제가 앞다투어 열리고 있다. 올해는 개화시기가 늦어 일정에 차질을 빚었고 여러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6.2 지방선거가 겹쳐 단체장이 바뀐 뒤로 일정을 변경한 경우도 여럿 있지만 여전히 축제는 꼬리를 문다.

지역홍보와 경제활성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좇기 위해 나름대로 여건과 강점을 살려 지명도 향상과 수익창출에 열성을 보인다. 지역축제 역사가 일천하고 축제 전문가 역시 그리 많지 않은 우리 현실상 축제의 변별력, 특성화 구축은 아직 미흡하다.

그래서 우선 주목을 끌고보자는 식의 품위없는 행사도 등장하고 전국 어디를 가나 유사한 프로그램은 결과적으로 재방문과 관심유발을 어렵게 만드는 현실은 지역축제의 공통된 고민이다. 매년 비슷한 기간에 정기적으로 열리고 담당공무원의 잦은 인사등으로 축제를 이해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프로그램 개발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몇 년전 충남 어느 군(郡)이 기획한 축제는 지역축제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역 특산물을 알리고 경제수익을 도모하겠다는 발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행사 프로그램으로 그 지역 특산물을 남성의 특정 신체부분에 견주어 '코 큰 남자 선발대회'같은 유치한 행사를 기획한 것은 그저 웃고 지나치는 단계를 넘어 도대체 이런 축제를 무엇 때문에 여는지 의구심이 들게하였다.

축제는 남녀노소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려 흥을 돋구며 즐기는 화합의 마당을 지향해야 한다. 그럼에도 은근히 성적 연상을 부추기는 주제로 행사를 마련한 담당자와 군수의 의식수준은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양반의 고장인 충청도의 품위와 격조 폄훼는 물론이려니와 지역축제가 어느새 막장으로 치딛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축제는 일회성 잔치니만큼 한번 웃고 넘어가자는 관심끌기 이벤트임을 강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소재빈곤, 아이디어 고갈이 드러나는 지역축제에 좋지않은 선례를 남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역축제가 봉착한 한계는 몇 가지 근본원인에서 비롯된다. 축제는 무엇보다 즐겁고 신명나는 행사를 마련해야 하지만 공무원들은 '공무집행' 차원에서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에 준비하는 사람 스스로 신바람나지 않는 행사가 관람객들에게 어떻게 감동과 재미를 줄 것인가. 볼 것없고 재미없는 축제를 매년 열 필요가 있을까. 미술계에 비엔날레, 트리엔날레가 있듯이 2∼3년마다 개최할 수도 있고 축제 콘텐츠 개발이 어려우면 인접 시·군, 구(區)끼리 연계할 수도 있다.

대안의 하나로 '마을 축제' 개발, 활성화를 꼽을 수 있다. 모든 것이 대규모, 광역화하는 이 시대에 별로 차별성없는 축제에 주민들이 즐거울까, 찾아오는 관람객들이 그 지역문화를 깊이있게 체험할 수 있을까. 대답은 모두 부정적이다.

대도시 주민들은 물론 중소도시, 농어촌 지역 주민들도 이제 천편일률적인 축제에 피로를 느끼는 가운데 지역축제의 한계가 이미 드러난만큼 각 마을별로 1천∼3천명 정도 소수의 내방객들을 위한 특별한 축제, 행사를 준비하는 마을주민들이 먼저 즐거운 축제를 활성화 시켜보자.

단순한 '농촌체험'으로는 부족하다. 거기에 '문화'를 접목시켜야 생명력을 얻는다. 이장, 부녀회장, 청년회장 등 농어촌 활동가들이 축제 기획자가 되어 특성화된 소규모 농어촌 마을축제를 지역축제의 중요 프로그램으로 연결시켜 성공한 사례는 많다.

전북 진안의 '진안군 마을축제', 강원 화천군 '여름마을 계곡소풍'과 '사랑방 마실', 경기도 이천시의 '율면의 사계' 그리고 전남 나주 '이슬촌 해피 크리스마스' 등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부지런히 준비한 지역주민들의 열성이 성공적으로 결합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축제로 모범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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