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 전 청주시장

올해로 4.19혁명 50주년의 반세기를 맞이하였다. 4.19혁명은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과 시민 봉기에서 촉발되었으나 그 저변에는 누적된 국민들의 울분과 정치적 불신감이 근원이 되었다. 자유당 12년 장기 정권에 의하여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는 유린되었으며 거듭되는 경제정책의 실패로 국민의 생활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정치형태로 인하여 자유당 독재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여 대중운동의 거대한 불길이 타올랐으며 자유와 민주를 염원하는 주권자의 정의의 함성을 독재자는 총격을 가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만행을 자행함과 동시에 무고한 학생, 시민을 공산당으로 몰아 무자비한 고문을 자행하는 등 형언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하여 4월 18일과 19일에 서울을 비롯한 부산, 대구, 광주, 청주 등 전국의 주요도시에서 수십만명의 청년학도와 시민들이 총궐기함으로써 전국적인 시위가 전개되었다.

그 당시 청주에서도 4월 18일, 19일 양일에 청주대학교 학생 전원과 청주공고, 청주상고, 청주농고, 청주고, 청주여고, 청주여자기고 등 수천명의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하였으며 수많은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어 구금을 당하였다.

그리고 전국 5대도시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선량한 시위대를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186명의 꽃다운 고귀한 생명이 민주의 수호신으로 산화하였으며 6천 400명의 중·경상자가 4월의 민주광장에 선혈을 뿌렸다.

이와 같이 희생의 대가를 치루고 쟁취한 위대한 4.19혁명은 제2공화국에서는 혁명으로 정의되어 국가정책으로 자리매김되었으나 4.19혁명이후 1년도 채 안되어 총칼로 민주정권을 탈취한 5.16군사쿠테타 정권은 4.19를 의거로 규정함으로써 4.19를 펌하 하였으며 또한 총칼로 정권을 강탈한 전두환 정권에서는 헌법을 개정하면서 아예 4.19를 지워버려 4.19혁명의 가치를 무시해 버리는 등 군부세력의 철학없는 국가정책의 시행으로 4.19는 영욕을 거듭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도 1987년 민주화 투쟁의 승리로 인하여 군부독재 정권이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와서 집권자의 의지에 의하여 4.19는 다시 혁명으로 정의되어 헌법전문에 명기됨으로써 잃었던 명예를 되찾게 되었다.

그리고 2000년 12월 4.19혁명 공로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도록 법률이 명시하였고, 4월 19일을 정부가 기념일로 정하여 4.19를 기념하는 행사가 정부와 자치단체 그리고 민주화운동단체가 주관하여 행하여지고 있다.

그러므로, 4.19혁명은 자유, 민주, 정의, 진리를 실현하기 위한 민족정기의 발현이며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고 정의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피의 항쟁이었다.

또한 민중의 결집된 힘과 의지로 새로운 시대를 창조해 나갈 수 있다는 교훈을 일깨워준 위대한 국민적 저항운동이었으며, 이 나라 민주화 운동의 선구자 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4.19혁명의 정신과 이념은 이나라 민주헌정사의 위대한 지표로서 후세에 길이 계승되어 승화시켜 나가야 할 책무가 오늘을 사는 국민 모두에게 있음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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