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광 섭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새로운 미래라고 해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이며 낯선 것들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오래되고 낡은 것일지라도 시대정신과 함께 에너지를 느끼고 향유하며 즐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존재가치를 갖는다. 과거와 현재가 공유하고 통섭과 융합을 통한 새로운 문화가치 생산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반만년의 세월 속에 숱한 전쟁과 외침으로 역사가 단절되거나 왜곡돼 왔으며 근대 이후에는 산업화의 물결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가치가 속절없이 짓밟히고 사장돼 왔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발상의 전환이 시대의 담론이자 화두가 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극복하며 새로운 미래가치를 찾으려는 노력, 지역마다 문화적 특성을 차별화하고 브랜드화 하며 역사의 큰 줄기를 외면하지 않고 새로운 브랜드로 업그레이드하려는 창조정신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대유행하고 있는 아트펙토리 역시 법고창신 정신의 산물이다. 버려진 폐건물과 낙후된 지역을 철거하고 최첨단 건물을 조성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세계 속에서 보고 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피폐한 도시가 문화의 힘으로 부활한 사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중국 베이징의 798지구. 옛 군수공장이었던 이곳은 버려지고 철거되기 직전의 건물을 문화예술 아지트로 탈바꿈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낡고 허름한 건물마다 세계 각국의 갤러리와 화랑이 줄지어 입주해 있고 관람·쇼핑·관광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다. 핀란드 핼싱키의 카펠리와 피스카스빌리지도 주목받고 있다. 옛 전선공장이었던 카펠리는 미술인 연극인 음악인 등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을 하고 크고 작은 전시회와 이벤트가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으며 가위공장이 이전하면서 폐허위기에 처했던 피스카스빌리지는 예술인들의 창작촌으로 꾸미면서 북유럽을 대표하는 전원형 예술촌 조성에 성공했다.

영국 남서부지방의 셰필드는 인구 51만명의 중소 도시지만 도심공동화 문제를 문화산업으로 슬기롭게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셰필드는 철강산업이 성장동력이었지만 1980년대 극심한 경기침체로 철강업계가 속속 문을 받으면서 어둠의 도시, 절망의 도시로 몰락하였다. 이후 셰필드는 문화산업지구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폐허가 된 공장 건물을 콘텐츠업체, 디자인업체, 영화사 등 다양한 문화산업 기업체의 창작공간으로 활용토록 하였으며 국립팝음악센터, 갤러리, 극장, 바, 벤처시설 등 다양한 문화센터로 재생하였다.

우리 주변에는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공간들이 산재해 있다. 칠흙같은 어둠이 엄습해 오는 재래시장, 낡고 오래된 공장 건물과 도심의 뒷골목, 옛 연초제조창 등 자치단체 소유의 건물들까지 널려 있다.

이들 공간에 인간의 온기가 돌고, 희망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세상의 다양한 문화와 정보가 공유하는 신르네상스를 만들어 보자. 경쟁력 높은 문화공간을 만듦으로써 낙후된 도시를 살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며, 도시개발과 복지 증진이라는 시대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 보자는 것이다.

낡고 허름할지라도 역사와 스토리를 중시하며 문화가치로 재편하고, 시민과 학생들을 위한 창작의 곳간을 만들며, 예술과 산업, 하이터치와 하이테크, 지역과 글로벌, 생태와 문명이 융합하는 생명의 숲을 만들어야 한다.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문화의 시대, 참여와 연대를 중시하는 소통의 시대, 인간의 온기와 디자인이 함께하는 감성의 시대이니 말이다.

지금 무심천에는 벚꽃이 만개했다. 맑은 햇살과 바람에 꽃잎들이 흩날리니 낡고 지루했던 내 마음도 꽃처럼 빛나고 있다. 아,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에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채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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