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 청주 운천초 교사

요즘 아이들은 무엇 하나 정성들여 하는 것을 보기 어렵다. 책 한 권을 진득하니 읽지 못한다. 학교 공부, 방과 후 공부, 학원, 숙제에 쫓기는 아이들은 '시간이 없다'라는 말만 한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탓하기에 앞서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안쓰럽다. 아이들은 쫓기듯 살다 보니 시간이 나도 무엇을 할지 몰라 컴퓨터에 매달린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컴퓨터로 채우는 듯싶다. 아이들을 보면 마치 모모에 나오는 회색신사에게 시간을 빼앗긴 아이들처럼 보여 더 안쓰럽다.

'시간의 꽃을 가진 모모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지난해 6학년 아이들과 '모모'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다. 모모에서 회색신사는 '시간 절약. 나날이 윤택해 지는 삶. 더욱 보람찬 인생을 사는 법-시간을 아껴라.' 와 같은 말로 사람들을 꼬드겨 시간을 빼앗아 간다. 사람들은 회색신사의 노예처럼 일만 하며 살아간다.

나는 '모모'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회색신사' 시늉을 하며 시간을 아끼지 않았던 일들을 반성해 보라 했다. 아이들은 웃음으로 나의 제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회색신사에게 시간을 빼앗긴 시민처럼 이야기했다.

'모모를 읽은 일, 시를 쓰고 시집을 만든 일, 축구를 한 일, 잠을 많이 잔 일, 애들이랑 수다 떤 일, 원기둥 전개도 만들기와 같이 시간 보낸 일'

시간을 아끼지 않았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역으로 가치 있는 시간이 어떤 시간인가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오늘 날 회색 신사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시간을 빼앗아 갈까?'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었다. 아이들은 회색신사를 엄마나 학교라고 말한 아이들이 많았다.

"회색 신사는 엄마 같다. 엄마는 나를 학원에 보내서 모든 시간을 공부에만 투자하게 한다."

"회색신사는 학교 같다. 학교에서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무조건 안 된다고 한다."

아이들은 회색신사를 시간만이 아닌 자유를 빼앗아 가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시간! 우리는 얼마나 아이들 뜻대로 시간을 쓰도록 하는가? 자유와 시간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아이들로 자라고 있다. 어떻게 하면 생각하며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아이들로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시를 읽고 소설을 읽고,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고, 원리 하나를 알려고 힘든 과정에 도전하는 아이들로 크게 할 수 있을까? 공부가 하고 싶어 도서실에서 여러 권의 책을 찾아 읽는 아이들로 크게 할 수 있을까?

다니엘페나크는 '소설처럼'에서 '책 읽는 시간은 연애하는 시간처럼 언제나 훔친 시간'이라고 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그 즐거움을 누가 찾아 줄 것인가? 부모와 교사다. 남보다 앞서야 하고 백 점을 맞는 것을 최고의 가치라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생각하는 아이들로 자랄 수 있다. 아이들 곁에 있는 부모나 교사는 시간의 꽃을 가진 모모가 될 수도 있고 시간을 빼앗아 가는 회색신사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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