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매일 20년, 한국영화 20년

1993년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63편으로 1971년 202편의 집계가 시작된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관객 점유율도 15.9%로 1983년 통계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았으며 한국영화 관객 수, 한국 영화 1인당 관람 횟수 모두 최저를 기록했다. '클리프 행어'가 111만, '주라기 공원' 106만 등 외국 영화들의 흥행 도미노가 이어지는 와중에 '새벽이 오기 전 가장 어두운' 침체의 양상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1993년은 영화라는 화두가 한국 사회 전반을 강타한 유례없는 한 해였다.

한 편의 영화는 '서편제'였다. 4월 10일 서울 단성사에서 단관 개봉했으나 관객이 들지 않는 쓸쓸한 첫 주를 보내야했던 이청준 원작, 임권택 감독의 이 '판소리 영화'는 이후 마치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것처럼 놀라운 열풍을 일으키며 '신드롬'을 만들어 나갔다. 역설적이게도 그 동력은 영화 텍스트 바깥, 정치부문에서 유입됐다. 5월 1일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관람, 정계은퇴 선언 후 영국 유학을 갔던 김대중 당시 민주당 전 총재의 귀국 다음 날 영화 감상 등의 '정치 뉴스'는 차츰 입소문이 늘어가던 영화 '서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10월 30일까지 역사상 최초로 서울 관객 100만을 넘기는 196일 연장 상영이라는 신화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개봉과 동시에 판가름 나는 흥행 성적에 따라 첫 주도 버티지 못하고 극장에서 내려오는 영화가 수두룩한 최근의 멀티플렉스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단관개봉시대의 신화였다. 김수철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이청준의 원작 소설, 판소리 강좌 및 국악공연까지 전국민적 열풍으로 정작 "충무로가 낳은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의 다소 흥분된 평은 "우리 것이 좋은 것"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소리에 묻혔다.

1993년을 달군 또 한 편의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주라기 공원'이었다. 7월 17일 개봉해 서울 관객 106만 명을 동원한 이 영화 한 편의 수익이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다는 대통령 연례보고서가 제출되면서 영화의 산업적 가치만을 주목하는 담론들이 무성했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산업으로서의 영화에 주목하면서 90년대 후반 대기업의 활발한 영화 산업 진출을 가능케 한 각종 법규가 신설되거나 개정됐다. 장관이 "서편제를 계기로 우리 영화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 단언한 문체부는 영상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중점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문화진흥장기계획을 발표했으며, 영화 및 영상산업에 제조업에 준하는 금융 및 세제 혜택이 주어졌다.

한편 "서편제가 한국 영화를 망친다"는 이의제기까지 나왔던 이상 열기 속에서 1950년을 배경으로 한반도의 분단 이데올로기를 한 판의 살풀이로 표현한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 풋풋한 19살의 첫 사랑 이야기를 특별한 미장센으로 그려낸 이명세 감독 연출, 김혜수 주연의 '첫 사랑', 정감 있는 아동 영화 '참견은 노, 사랑은 오 예'(김유진 감독) , 장선우 감독의 관념적 탐구를 담은 '화엄경'(사진) 등은 조용하게 잊혀졌다. 그리고 대한뉴스가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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