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선 교육평론가

그동안 필자가 쓴 칼럼이 400꼭지를 넘어간다. 모두 신문 글이다. 중앙지, 지방지 구별하지 않고 쓴다. 보수신문이니, 진보신문이니 그런 것도 별로 따지지 않는다. 글을 쓰는 내 자신의 판단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한국언론재단에서 발행하는 <신문과 방송>에서는 필자를 한국의 주요 오피니언 리더로 소개하기도 했다. 교육 분야에서는 최다일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원고 마감일이 다가오면 좌불안석이 된다. 글감이 쉽게 잡히면 괜찮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소화가 되지 않을 정도다. 피가 마를 때도 있다. 항상 애면글면하지만 만족스러운 글을 쓰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글을 쓰는 자체가 즐겁다. 과분한 말이지만 친구들은 이런 필자를 글쟁이로, 혹은 행복한 칼럼니스트로 부른다.

#글쓰기는 즐거움이자 '자기검열'

칼럼니스트 조용헌씨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 글을 써가는 단계를 3단계로 구분했다. 첫째, 튜브안의 치약을 다 써버린 것처럼 글의 밑천이 바닥나는 단계, 둘째, 바닥난 칼럼소재를 낚으러 다니는 단계. 낚시를 하듯 사람들을 만나 필요한 글감을 얻는 단계가 온다는 것. 셋째, 굶주린 사자로 변하는 단계,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사자처럼 글감을 사냥하는 단계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바닥난 글감을 찾아 낚시에서 사냥으로 진화된다는 설명이 상당히 재미있다.

하지만 필자는 위의 경우와는 좀 다르다. 부지런한 개미 스타일이다. 이론적인 내용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글감이 될만한 것들은 수시로 정리해 놓는다. 여행이나 사람들을 통해 글감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그 횟수가 많지는 않다. 독서와 사색, 산책을 통해 얻는 경우가 훨씬 많다.

특히 셋째 단계의 경우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오히려 필진표 날짜에 맞춰 글을 여러 날 숙성시키는 편이다. 비축해 놓았던 글들을 다시 다듬어 놓으면 후일 걱정을 덜 수도 있다. 급하게 원고 청탁을 받는 경우에도 능동적으로 대비할 수 있어 좋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았다.

필자가 쓰는 글은 모두 교육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교육 이외의 글은 쓰지 않는다. 다른 부분들은 필자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평의 준거도 '탈 이념,' '수요자중심,' '인권존중'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필자가 교육을 '평(評)'하고 '논(論)'하는 '필로소피'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기자가 기사로 말하듯, 판사가 판결문으로 말하듯, 필자는 필자만의 기준과 방식으로 말한다는 것.

#결론은 좋은 교육을 꿈꾸기 때문

필자의 글쓰기는 '자기검열'이자 소통을 위한 참여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검열에 기반한 직접소통이다. 참여 없이 사회가 발전하기는 어렵다. 권력을 부여하는 것도, 견제하는 것도 투표라는 참여행위로 이루어진다. 다중이 광장에 나가는 것도, 트윗팅도, 일인시위도 모두 마찬가지다.

글을 쓰다보면 에피소드도 많다. 시원하다며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병선이란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있다. 교직사회를 비판할 때는 더욱 그렇다. "너나 잘 하세요"라며 탓잡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적인 사정을 담아 글을 써달라는 부탁도 있다. 어쨌든 이 모든 것들이 글을 쓰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이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이유 한 가지, 불가능한 꿈은 리얼리스트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리얼리스트는 불가능한 꿈을 꾸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고 했던가. 좋은 교육을 꿈꾸기 때문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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