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의 세상읽기]

옛날 5일장이 서는 시골의 장터엔 옷가게, 채소전, 어물전에 투전판이 들어선다. 또 한편에 각종 농기구와 농약과 씨앗등이 판을 벌이고 방물장수도 자리잡는다. 뻥튀기도 있고 고무신을 때우는 사람도 있다. 오만가지 물건이 다 있다.

장 마중 나온 사람들이 빙둘러선 곳엔 만병통치 약(?)을 파는 약장수가 목청을 돋운다. 장터는 벌써 시끌벅적하다.

천막을 치고 들어선 국밥집. 장터국밥과 막걸리가 궁합을 이루고 모처럼 장에 나온 사람들로 북적댄다. 이웃마을 친구들과 어울려 대폿잔을 기울이는 할아버지들은 흥겹다. 해질녘, 한잔 술에 거나해진 할아버지는 고등어 몇 마리 싸들고 집을 향한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콧노래가 함께 간다.

이처럼 옛날 장날의 난전은 잔치였다. 5일장의 장날이 무색해진 요즘의 재래시장들이지만 시끌벅적하기는 마찬가지다.

청주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육거리시장.

시장골목에 들어서면 예나 지금이나 옷가게가 있고 젓갈류에 고등어 갈치등 생선가게도 있다. 옛날과자와 호떡도 있다. 각종 채소가게와 반찬가게가 이마를 맞대 있다. 백반과 순대국밥집이 있고 통닭과 전부침과 동그랑땡집이 있다. 기물가게와 신발가게에 떡집도 한자리 했다.

시장내 좁은 길목마다 사람들로 붑빈다. 어깨가 부딪치고 때론 떠밀려도 미안한 표정에 씩 한번 웃는다. 그 곁으로 자전거도 지나고 오토바이도 바쁘다. 오가는 말투도 정겹다. 각 지방 사투리가 한데 어우러진다. "이 생선 좋아유", "좀 깍아 주이소." 여기저기서 흥정이다.

막걸리와 순대의 궁합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한 두잔 돌아가는 사이에 형님과 동생의 목소리가 커진다. 이웃자리 아저씨도 껴든다. 막걸리잔도 늘어난다.

육거리시장이 이렇게 북적일 때 시장 입구의 도로변에 난장을 편 노점상들도 시끄럽다. 노점상들의 좌판에도 없는 것이 없다.

직접 만들어 갖고 나온 두부와 묵이 있고 콩나물에 된장이 있다. 오이와 콩 그리고 호박 몇 개를 담아서 판다. 미꾸라지와 새뱅이에 가물치와 붕어등 민물고기도 있다. 올갱이도 한 몫이다. 무와 오이장아찌에 깻잎과 미나리 고사리에 깐마늘이 있다. 요즘엔 마늘이 제철인가 보다.

한 할머니는 좌판 앞에서 졸기도 한다. 마늘종과 쑥갓에 양파와 호박 몇 개를 갖고 나온듯 한 할머니의 노점상 물건 값은 모두 합쳐야 대략 2만원쯤 될까 싶다. 그래도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근심은 없어 보인다. 다 팔지를 못해도 하루 장사를 할 수있다는 건강이 있고 내 자리 몫을 차지했다는 뿌듯함이 있어 그런 것같다.

노점상 할머니들은 점심도 집에서 싸온다. 점심때면 서너명이 둘러앉아 먹는다. 반찬은 집에서 갖고온 풋고추에 된장 그리고 김치뿐이다. 그러나 시장기가 반찬이기에 밥맛은 꿀맛일게 분명하다.

시장입구의 노점상들은 장사가 안된다고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장사는 될 때가 있고 안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노점상이 제일 무서워 하는 것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인정없는 구청의 단속 공무원들이다. 단속은 늘 '파리 쫓기식'일 뿐이지만.

노점상의 단속 이유가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것이다. 노점상에서 열무 한 단을 산 한 아주머니는 "노점상에서 장보는 재미도 있다"며 "노점상이 인도에 있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정작 시민들은 불편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재래시장을 찾는 것이 북적대는 사람들 속에서 살가운 사람 냄새와 조금은 땀 냄새도 맡아가며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인정속에 묻히고 싶기 때문이다.

시장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노점상을 먼저 살핀다. 산나물이나 버섯등이 철따라 제일 먼저 선보이는 곳이다. 봄철엔 향긋한 산나물의 향기가 노점상으로부터 시장안으로 퍼진다. 사람들은 그 향기를 따라 시장안으로 간다. 노점상이 있어 정이 넘치는 육거리시장이다. / 前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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