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남아메리카가 고향인 담배. 17세기 광해군 때 일본으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당초 마야인의 종교의식용였던 담배가 점차 기호품으로 바뀌어 현재는 마약 못지않은 암적존재다.

담배연기는 4천 여 종이 넘는 발암물질과 독성 화학물질을 가지고 있다. 살충제와 제초제로 쓰이는 니코틴(nicotine)과 아세닉(arsenic) 그리고 디디티(DDT),사형 가스실에서 사용되는 청산가리, 담배갑에 표기될 정도로 건강에 가장 해로운 독성물질인 타르, 일산화탄소 등등 20여 가지가 A급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이런 줄도 모른 채 10여 년 동안 달콤(?)하고 구수하게 피운 담배를 과감하게 끊었다.

때는 논산훈련소 교육을 마친 뒤 늦깎이 사병생활이 시작된 1985년 11월 28일 정오. 이른바 자대배치 날. 모두 숨조차 함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긴장감이 감돌 때다. 눈알마저 고정시킨 채 조막만한 마이가리 상병에 이끌려 식당으로 갔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후딱 먹어 치운 뒤 스르륵 눈알을 요리조리 돌리던 순간, 조금 전 고참이 다가섰다. "밥 다 먹었으면 1분 내로 화장실로 집합!". 서릿발 명령에 "충성!"소리와 함께 용수철처럼 튕긴 나를 비롯한 동기 2명은 이미 화장실에 와 있었다.

그의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꺼내진 빨간 솔은 우리들 손으로 하나하나 옮겨졌다. 라이터까지 켜주며 "피워!". 훈련시절 '한라산'만 피워온 우리로서는 사제담배 '빨간 솔'을 보는 순간 반가운데다 목소리도 부드러워 날름 받아 입에 물었다. 5분 여 동안 자상하게 부대설명이 이어지자 부동자세는 짝다리로 변했고 입에선 도너츠까지 만들어지고 있었다.

뜬금없이 고참은 빗자루와 봉걸레 ,쓰레받기를 우리 손에게 각각 쥐어 주었다. "졸병이 올 때까지 제군들의 밑에는 각자 가지고 있는 청소도구 밖에 없다. 인간이길 포기하면 우리도 좋고 제군들도 좋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내무반 생활 잘 하도록, 알았나!" 천당과 지옥이 바뀌는 순간였다. 훈시는 이어졌다. "부대에서 사람이라고 생긴 것만 보면 무조건 거수경례를 해라", "마지막 한 가지 더! 특별지시가 있을 때까지 담배는 화장실 창고에서만 피워라. 다른 곳에서 피우다 걸리면 뼈도 추리지 못할 줄 알아라"

고참은 득의양양하게 화장실을 나갔다. 10여 제곱미터 남짓한 화장실에는 역한 냄새는 온데 간데 없고 고참의 추상같은 명령이 여기저기 맴돌고 있었다. 슬펐다. 그것도 몹시. 10여년을 달콤하게 피워온 담배인데 식사 후 화장실에서만 피워야한다니… "나이 들어 군대 온 것도 서러운데 남 못지 않게 배운 내가 인간으로서는 바닥이라니…" 자존심이 왕창 구겨지고 존재의미 마저 상실할 정도였다. 인간적인 모멸감을 형언하기 어려웠다.

담배 불은 중간쯤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구차하게 담배를 피우려면 아예 끊고 말지".

지난 1975년 겨울 입에 불을 때기 시작한 후 꼭 10년 만에 담배를 끊는 순간이었다. 담배를 바닥에 내동댕이쳐 워카 발로 짓이겨 버리고 휭 하니 화장실을 떠났다.

담배와 인연을 끊은 채 제대한 뒤 도서관을 다닐 때였다. "혹시 '언덕 위 하얀 집 부대'서 근무하지 않았습니까?" 기사가 룸미러를 쳐다보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군대 생활 같이 한 김00입니다" 얼른 알아보지 못했지만 내 자존심을 무참히도 짓밟았던 바로 그 군대 고참이었다. "그땐 정말 고마웠습니다"는 내 말에 그는 무슨 말인지 몰라했다. 그 후 한 두 번의 흡연충동이 있긴 했지만 과거 짓밟힌 자존심이 뇌리를 스쳐 금연전선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다.

무병장수의 필요충분 조건 6가지(禁煙, 小食, 小酒, 多動, 多休, 多接) 가운데 제일로 치는 금연. 사실 끊기가 무척 어렵다. 하지만 끊어야한다. '食後煙草 不老長生(식후연초 불로장생)'이라고? 아니다. 웃기는 소리라는 걸 그대들도 잘 알지 않는가, 흡연가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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