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전원 기후변화 전문강사

'단체조문객은 예약실로! 유(酉)씨 손님은 마당으로! 술(戌) 손님은 마루로! 양(未)반 댁은 방으로!' '방명록 서명 순으로 음복하세요!' '내일은 밤 9시까지 조문(손님) 받습니다.' 어느 탕 집 입구에 붙어 있는 안내문이다.

해마다 복날이면 더위를 이기는데 큰 힘이 된다는 닭과 개와 염소 등이 그동안 잘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살펴준 주인의 건강한 여름나기를 위한 복달음의 제물이 되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의 충직한 뜻을 기리기 위해 절후는 아니지만 연중 더위가 가장 심한 때를 골라 하지 다음의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 넷째 경일은 중복, 그리고 입추 다음의 첫 경일은 말복이라는 이름을 붙여 무등록 기념일을 정해 국민들의 애도하는 마음(?)을 정성들여 전하고 있다.

이때를 '삼복더위'라고 하는데, 열흘 간격이 보통이나 더위가 길어지면 월복이라 하여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이 되기도 한다.

지구 온난화로 유난히 더웠던 올 같은 삼복에는 물가와 산간계곡을 찾아 청유를 즐기거나 자양분이 풍부한 삼계탕·개장국·염소탕 등 여러 가지 보양식품으로 보신을 한다. 절후도 아니면서 명절처럼 지켜지는 삼복이 이젠 놓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삼복 중 한번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복 달음을 즐기고 있다.

한낮 기온이 30℃를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찬바람이 날 때까지 양계장에서 날갯짓으로 더위를 식히려다 순직한 군계는 우리나라 인구수를 훨씬 상회한다고 하니 온 국민이 합동위령제를 올릴 만도 하리라.

견공도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에 잠 못 이루며 밤손님 지키다 순직하는 숫자가 부지기수이고, 자연산 약초로 원기 돋우는 영양소 잔뜩 만들어 놓고 미래 설계하던 흑염소도 장마철 설사에 맥 못 추고 열탕 찾다가 열사병으로 하직하는 숫자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란다.

이들은 냉동되어 전국 곳곳의 소문난 장례식장(탕 집)으로 집단운구 되었다가 연초에 예고된 삼복 길일을 택하여 합동으로 장례가 치러지는데, 부음이 없어도 조문객이 인산인해를 이룬단다.

이번 여름에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요즘의 복날은 보통 3일에 걸쳐 치러지고 있어 삼일장이라고도 한다. 복날에는 복달음탕 집인 상가가 복잡할 것을 예상해서 복 하루 전이나 복 다음 날에 조문·음복을 하고 있으니 인간사처럼 삼일장이 당연할 것이다.

부의금은 기본이 최하 만원에서 몇 십만 원까지 천차만별인데, 부가세로 음료수와 술값이 더해지며, 외상이나 카드 결제도 허용되고, 말만 잘하면 거저도 준단다.

조문객이 많으니 입구에서부터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수준 높은 조객들이라서 그런지 땀에 옷이 흠뻑 젖어도 불평 한마디 없이 기다린다. 어떤 이는 한가할 때 오겠다며 돌아가기도 한다.

음복 전에 기도하는 이, 합장하고 고개 숙이는 이, 성호를 긋는 이, 그저 군침만 삼키는 이, 맛있게 드시고 더위 잘 보내라는 덕담에, 내일은 우리도 방에서 음복하게 양씨네 조문을 가자며 시간 맞춰 예약하는 이도 있다.

초상(初伏) 잘 치렀냐는 물음에 소상(中伏)과 대상(末伏) 때도 이번 같았으면 좋겠다면서 국장이니 아마도 9일장은 될 것 아니냐며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란다. 요즘 추세로 복 하나에 3일씩 하면 9일장이 기본이나 상가의 시설과 음식 맛으로 장례일수가 결정되니 내부수리는 손님맞이 준비의 필수 조항이었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이들이야 더 정중한 장례의식을 갖겠지만, 빈 골을 채우기에 바쁜 이들은 이때를 놓치면 여름나기가 아주 힘들다고 하니 기후변화로 해마다 점점 더 더워지고 있는 지구를 식히는 일에도 삼복 명절 지키는 것만큼이나 깊은 관심 기울여 시원한 지구에서 함께 여름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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