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섭 논설위원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5급 사무관 특채 파문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그 와중에 누리꾼들 사이엔 특채 혜택을 받은 사람들을 일컫는 '똥 돼지'란 용어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원래 '똥 돼지'라는 용어는 모 그룹의 인사팀에 낙하산으로 들어온 고위층 자제를 해당 직원들이 비아냥대며 사용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위층 낙하산 자제들을 통틀어 일컫는 용어로 폭넓게 쓰이고 있다. 사기업은 오너의 자녀가 초고속 승진을 하여 기업을 물려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반면 투명한 줄 알았던 공직사회도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사기업 못지않게 똥 돼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자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인터넷 누리꾼들은 정부 부처는 물론 공사, 금융기관, 학교 등 다양한 서식지에서 똥 돼지들이 번식하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다.

"연줄로 입사한 사람들은 IMF 때도 무사하고 진급만 잘 되더라."

인터넷 아고라에 뜬 '전직 공무원이 본 음서제 고발' 제목의 글은 조회 수가 8만6천 건을 넘을 정도로 누리꾼들의 폭발적 관심을 끌고 있다.

"아빠는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 중 하나 아닌가요. 세 가지 직업이 아니면 아빠가 아니잖아요. 그냥 동네 아저씨지. 아니, 표정들이 왜 그러세요? 취직하려고 토익공부 하는 사람들처럼."

소문으로 알았던 '똥 돼지'들의 존재가 사회 곳곳에서 현실로 확인되면서 이를 증오하는 패러디들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윗물부터 썩을 대로 썩은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파악한 누리꾼들은 "이 상황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을 쌓아보았자 부질없는 짓"이라며 개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불공정한 게임에서 그나마 신분상승의 마지막 보루였던 고시제도마저 철폐하려는 정부 방침을 보면서 실낱같던 희망마저 사라지는 암울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고시제도가 연공서열 승진으로 생산성과 경쟁력을 약화시킨 측면도 있지만 이를 통해 등용된 강감찬, 이황, 이이, 이순신, 유성룡, 이항복 등의 사례를 들며 숱한 역사적 인물들을 배출한 검증된 제도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제는 가난한 자들이 신분상승할 수 있는 기회조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더 심각한 것은 똥 돼지를 패러디하면서도 그 벽을 넘어설 수 없다는 자괴감에서 흘러나오는 자포자기 심리가 한국사회를 짙게 드리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특채 파문이 최근 중앙부처에서 자치단체까지 전 공직사회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정문 앞에서 'MB 정부 특별채용 인사비리 전면 조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각종 인사 비리 사례를 공개했다.

감사원도 금주부터 공직인사 비리에 대해 전면 감사에 착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감사원이 공무원 인사 등 특정 분야에 대해 집중 감사하겠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공직사회의 충격도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없는 자들은 공직의 자리 하나를 얻으려고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그런데 부모라는 스펙을 잘 만난 똥 돼지들은 인맥을 통해 쉽게 입사하고 쉽게 승진하는 풍토가 만연되어 있다.

이런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똥돼지'란 우리 사회의 불공정 구조를 상징하는 용어이다.

똥돼지가 서식할 수 있는 여건을 방치하는 한 가진 자와 정부를 향한 국민들의 적개심은 끝 모르게 불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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