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오 소설가

'공정한 사회'가 사회적 화두로 회자되고 있다. 공정하지 못한 탓이다. 폐활량 좋은 사람이 산소호흡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에피소드부터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목로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가 한숨을 푹 쉬었다. 개인사업장도 아니고, 나랏밥을 먹고 산다는 놈이 한숨이라니. 그 나이에, 삼팔선 허물어진 지가 언젠데 제복에 겨워 저러니 했다. 물어볼 기색이 없어 보이자, 녀석이 먼저 운을 뗐다. 자기 위로 선배가 네댓 명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승진을 했단다. 뜬금없는 말이라 술잔만 들썩이는 내게, 어지간히 답답했던지 시비조로 막말을 섞었다.

"야 인마, 이게 도대체 말이냐 되냐. 승진해 나간 놈이야 용 빼는 재주가 있어 그렇다 쳐도,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지 싶다. 물경 7년을 앞서 나간다는 게.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젤 고참인 신모 씨 같은 사람이 승진서열에도 없었다는 거다. 너도 알잖냐, 소죽은 귀신처럼 일만 아는. 인사부서에선 뭐란 줄 아냐. 융통성 없고 주변머리가 없어 그렇단다."

나랏일 하는데도 저런 게 있나 싶어 고개를 끄덕여줬더니 비분하여 말하기를. 저들은 그 자리에 앉기만 하면 지네 이름자 앞에 1,2번 넣기 바쁘고, 인사권자 비위맞추기에 급급한 그런 자들부터 승진시켜서야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냐고. 그러면서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기를. 앞으론 나도 승진이란 걸 하자면 그 사람들 잘 간다는 동호회라도 가입해야 할 것 같다며, 카메라 후레쉬 터뜨리듯 술잔을 털어냈다.

술맛이 썼다. 내 개인적으로는,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이란 걸 하고 물경 20여년이 넘는 세월을 글이란 것에 매달려 왔다. 소설가들로만 구성된 '소설가협회'에도 적이 올려져 있으니 소설가가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터이다. 사이비가 많은 세상에, 친구의 저 서글픈 한탄이 바로 '공정하지 못한 사회'의 단면인 것만 같아 덩달아 강개해진 것이다.

러시안 룰렛이라고 있다. 리볼버 권총에 실탄 한 발 씩을 넣고 실린더를 돌린 후, 방아쇠를 당기는 게임이다. 내가 죽거나 네가 죽거나, 아니면 동시에 다 죽거나 다 살아남거나. 생명을 건,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게임임엔 틀림없다. 그런데도 결과에 승복하는 건 어째서일까. 출발에 거짓이 없고 그 과정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공정한 사회를 이루자면 먼저 출발부터 공정해야 한다. 누구나 고고성을 지르며 벌거버숭이로 태어난다. 공정할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몇십 억, 몇백 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 외제차 한 대를 샀더니 소형차 한 대가 덤으로 따라오더라는 식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여벌로 갖고 있는 사람들. 그 출발부터가 공정하지가 못 하다. 이런 상태로는 서민의 자식들이 아무리 가랑이가 찢어져라 뛰어본들 그들을 따라잡기란 역부족이다. 출발이 이러하니 고시출신의 70%가 'SKY'이란다. 나라의 중추가 되자면 '고소영'이어야 하고 '강부자'라야 된 단다. 여배우 이름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과정의 공정함이다. 망루탄주(網漏呑舟)란 말이 있다. '그물이 느슨해지면 배도 지나간다'는 말이다. 법의 잣대가 똑같아야 함은 물론이요, 저울추의 기울기 역시 같게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키 150Cm 이상의 어린이를 별도 관리할 발상이 아니라면 이보다 못한 아이의 성장을 도와주는 것이 공정한 사회로 가는 첩경이다.

공정한 사회란 우리와 동떨어지지도 별나지도 않다. 풀잎처럼 부대끼면서도 제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민초들. 열심히 일한 만큼 정당한 보수를 받고 누구에게 빌붙지 않아도 때가 되면 승진하는, 그런 솔직한 사회라면 이미 공정한 사회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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