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 법무법인 '청남' 대표변호사

1단계= 나는 5급 공무원 공채에 떨어졌다. 2단계= 내 옆의 동료는 특채로 합격했다. 3단계=그러나 내 옆의 동료가 특채로 합격한 것은 그의 부친이 고위 공직자이거나 부자였기 때문이다. 4단계= 고위공직자가 된 과거의 내 동료가, 이제 그의 부친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아들을 특채에 합격시켰다.

당신이 평범한 시민이라면, 3단계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낄 것이고, 4단계에 이르면 들고 일어설 것이다. 3단계부터는 이미 공개적 채용시험을 의미하는 고시나 공공의 업무를 수행하는 자리인 공직이라는 말은 무의미해지고, 오히려 공개·공공으로 포장된 권력과 부의 세습이고, 고시·공직은 권력과 부의 강화·세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할 것이다.

필자에게 국가, 정치,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단연코 그것은 물리적 힘, 세습적 재산, 시장 등 야만권력의 불평등을 제어하기 위해서 라고 답변한다.

국가기구의 중요한 한축을 담당하던 장관이란 사람이 온갖 편·불법을 동원해 자신의 딸에게 공직을 선물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 장관이외에도 공무원 특채의 절반가량이 그러하다고 하고, 지자체의 별정직 임용, 공기업에의 취업 등으로 확대하면 거의 모두 그러하다고 한다.

공직에의 취업에서만 그러할까? 아닐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 입학이나 편입학까지, 취업에서 승진까지 대한민국의 어느 한 구석 마다하지 않고, 그 출발선부터 부모나 집안의 지위, 권력, 재산에 따른 자녀들의 특혜가 만연되어 있어, 대한민국은 가히 '음서(蔭敍)공화국'이라고 할 만하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신자유주의 광풍의 사상적 비조인 하이예크의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난다는 말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라는 말이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진실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의 최대 화두는 '공정한 사회'다. 솔직히 필자는 이 대통령이 말하는 공정한 사회가 무슨 의미인지, 무슨 의도로 이 시점에서 공정한 사회를 거론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고대희랍의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최근의 베스트셀러인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교수에 이르기까지 공통되는, '공정 또는 정의(正義)로운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정의(定義)는,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대로 재산, 권리, 공직, 명예 등의 사회적 가치를 배분해 주는 사회라는 것이다.

현대판 음서를 보면서, 야만권력을 제어해야 할 국가, 정치가 오히려 야만권력의 폭압성을 정당화하고 증폭시키는 도구로 전락한 과거 군사정권의 패악이, 이제는 공직마저 자신의 권력과 부의 전리품 정도로 인식하는 비열함, 파렴치함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느낀다. 만연된 불(不)공정을 넘어 적극적으로 반(反)공정·불의를 의욕하는, 공직을 탐나는 지대·잉여 정도로 생각하는 탐욕의 수준이다.

국가는 우리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조건적인, 맹목적인 강요가 아니라, 국가가 우리를 공정하게 대우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그래서 지킬 가치가 있다는 우리 스스로의 자부심 때문이다.

물리적 힘, 세습적 부, 시장권력을 제어해야 할 국가기구의 인적바탕인 공직마저 시장의 패권자나 정치 권력자들의 전리품, 상속품으로 전락할 때, 우리에게 국가, 정치, 민주주의는 더 이상 무의미해 지고, 후자는 오히려 전자의 야만성, 불평등성을 강화하는 수단에 불과하여 그러한 국가의 필요성에 우리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고, 그 국가는 우리에게 더 이상 충성을 요구할 수도 없다.

근세의 마키아벨리는 국가와 법의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사회지도층의 범죄에 대해 "뇌리에 박히는 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판 음서는 국가를 기초부터 와해시키는 반국가, 반사회 범죄다. 국가, 정치,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공정한 사회의 최소한의 기초를 이루기 위해 지금 뇌리에 박히는 처벌을 해야만 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