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의 세상읽기]

요즘 청주시내를 조금 벗어난 외곽도로를 지나다 보면 인근 야산에서 '윙 윙 윙'하는 기계음 소리가 요란하다. 추석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벌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초기 소리 가 나는 곳을 쳐다보니 낮으막한 언덕위 2기의 산소에서 벌초를 하고 있다. 벌초를 하고 있는 사람은 단 두 사람. 아버지와 아들인듯 하다.

지난 음력 7월15일이 백중이다. 백중 이후 추석 전까지 한달 사이에 조상의 산소에 자란 잡초를 베고 산소 주위를 정리하는 풍속이 벌초다. 옛날엔 낫으로 벌초를 했다. 낫으로 풀을 깍는 일은 안해본 사람은 못한다. 한다고 해도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겨우 했다는 것이 자칫 '처삼촌 뫼 벌초하듯 했다' 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요즘엔 예초기를 사용해 훨씬 수월하다. 예초기도 다루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잘못하다가는 빠른 회전속도로 돌아가는 칼날에 큰 부상을 당하기도 한다.

며칠 전. 청주시 외곽 도로. 늦은 오후 시간. 땀에 젖은 작업복을 입은 중년의 손님이 젊은이와 함께 택시를 타고 나서 말을 건넨다.

"오늘 아침부터 아들과 벌초를 하고 오는 길인데요, 영 마음이 편치 않아요." "왜 그러세요, 추석을 앞두고 벌초까지 하셨는데. 마음이 편하셔야죠."

"글쎄요. 몇 년전 만 해도 벌초를 할 때는 온가족이 다 모여 했는데 요즘엔 아들과 단 둘이 하다보니 그런가봐요."

손님은 한숨을 내쉰뒤 말을 잇는다. "언제부턴가 동생들과 조카들이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벌초때 잘 오지를 않아요. 괘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해요." "그러시겠네요." 아들이 말을 잇는다. "아버지, 저희도 이제 납골묘를 써요. 벌초하기도 힘드시잖아요."

"손님, 요즘 젊은이들 다 그래요. 벌초를 대행업자에게 맡기시라고 하지 않나요." "네, 그래요. 이러다간 벌초의 풍속도 없어지겠어요." "그것이 시대의 흐름이고 세대의 변화인데 어떻하시겠어요." "글쎄요… 참."

핵가족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세상엔 형제나 친척들이 모두 모여야 몇명 되지도 않는다. 게다가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바쁜 일상에 쫓기며 생활한다. 그러다보니 추석을 앞두고 일년에 한번 하는 벌초에도 참여하기가 쉽지도 않다.

이처럼 일년에 한번 벌초하기도 힘들고, 조상의 산소를 방치할 수도 없자 몇해전부터 벌초 대행업이 성업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장묘문화가 바뀌어 가고 있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즉 봉분에서 납골로, 수목장으로.

충남 홍성군의 경우도 올 상반기 중 화장건수가 172건으로 같은 기간 사망자수 376명의 45.7%에 이르고 있다. 청주시의 화장율도 60% 이상이며 서울과 수도권의 화장율도 70∼80%에 이르고 있다. 화장 후에는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가족 납골묘를 조성해 유골을 안치하고 있다.

수목장도 인기다. 산림청이 경기도 양평군에 조성한 국유 수목장림인 '하늘숲 추모원'의 경우 개원 1년만에 전체 추모목 2009그루 가운데 38%인 759그루가 사용 계약이 체결됐다. 1년 동안 현장을 방문하거나 견학한 사람이 3만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명문 집안들도 자연장(葬)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도 유교문화가 뿌리깊은 집안들이다. 경주최씨 문중의 한 문중 집안은 잔디밭에 분골을 묻는 자연장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상주의 진주강씨의 한 문중 집안도 분골을 창호지로 싸서 묻는 가족묘원을 꾸리고 있다는 것이다. 광산김씨 한 문중도 집안 장례를 수목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얼마전에는 모 정치인도 부모 합장묘를 개장해 유골을 화장한 후 수목장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의 장묘문화가 세대가 바뀌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그래 그런가. 곳곳에서 벌초를 하는 예초기의 기계음 소리가 올해에는 유달리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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