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녹색도시, 그린스타일이 시대정신으로 주목받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 인스턴트식품의 노예가 돼 있는 현실, 복잡다단한 삶의 협곡에서 인간이든 자연이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고달플 뿐이다. 이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는 새로운 대안을 녹색에서 찾으려 하고 이것이 혼탁한 정신을 치유한다고 믿는다.

그린스타일에는 기본적으로 자연을 존중하는 겸손한 마음이 담겨있다. 자연의 캠퍼스라는 게 워낙 신비롭고 영롱해 사람의 마음까지도 명료하게 한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멋과 향과 자태를 자랑하지만 결코 자만하지 않는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儉而不陋),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華而不侈) 삶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일본 도쿄에서 동북신칸센으로 3시간을 달린 뒤 시골길을 들어가면 이와테현의 산골마을이 있다. 해발 400미터가 넘는 산 위의 마을 구즈마키는 바람이 강해 '바람의 마을'로 불리지만 1만 명도 안되는 마을에 매년 5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풍력과 태양광, 바이오가스 플랜트 같은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시설을 모두 볼 수 있는 환경마을이기 때문이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 마을은 국내 대표적인 슬로우시티로 알려져 있다. 옛 한옥과 오래된 담장길이 일품이고 인근의 대나무숲과 소쇄원, 그리고 가사문학관 등 역사문화와 생태가 오롯이 보존돼 있어 국내외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다. 우리지역에도 산성길, 수암골, 대청호변, 초정리 등 우리 고유의 삶과 멋을 콘텐츠화 할 수 있는 자원이 많음에도 방치하고 있어 가슴 아프다.

특히 초정리는 약수의 고갈과 무분별한 개발로 신음하고 있으니 세월을 탓할수도, 인간의 이기를 나무랄수도 없어 애달프다. 게다가 숙박시설인 스파텔이 10년 넘게 애물단지로 전락하면서 자치단체의 시름도 깊어졌다.

초정리는 미국의 샤스터, 영국의 나포리나스와 함께 세계 3대 광천수 중의 하나다. 세종대왕이 한글창제 과정 중 안질 치료를 위해 120일간 행궁을 짓고 요양했으며, 톡 쏘는 알싸한 물맛, 백두대간의 생태와 문화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곳이다.

초정리만큼 훌륭한 스토리텔링을 간직하고 있는 곳도 찾기 힘들다. 초정리 문제해결을 위한 전략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생태와 역사와 문화를 특화하고 브랜드화 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아름답던 대자연의 생명도, 역사도, 문화도 속절없이 사라질 것이다.

초정리가 다시 생명의 불씨를 지필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한다. 초정리만의 독특한 삶과 문화, 생태와 웰빙이 호흡하는 생명의 숲을 만들고 차별화된 콘텐츠로 특화되기를 소망한다. 세종대왕 행궁을 복원하고 세종과 구녀성, 그리고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숱한 스토리를 콘텐츠화 하고 랜드마크화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초정리는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초정리의 신화와 전설, 초정리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꾸며보자. 한글을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형상화한 한글테마파크를 만드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개구리 송사리 올챙이와 함께 뛰어놀던 실개천을 복원하고 우물가의 청소부 물방개와 정다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곳도 만들자. 수많은 유실수와 토종 나무와 식물을 심어 생태숲을 만들고 기와집 초가집 골목길 등을 온 몸으로 품을 수 있는 전통문화타운을 조성하자.

자전거를 타고 박물관 미술관을 투어하며, 맨발로 숲속을 걷고 신화와 전설의 아련함에 취하며, 실개천에서 고기를 잡고, 초록으로 무성한 숲에서 맑고 밝은 햇살의 기운을 받으며, 옹기종기 모여 앉아 쏟아지는 별빛을 품고, 시원하고 알싸한 약수에 내 몸을 던지고….

깊고 느리게, 오래된 미래를 즐기며 삶을 재충전할 수 있는 크라토피아(cra_topia)의 모델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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