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한가위가 되면 보름달과 송편이 떠오르고 회자되는 덕담이 하나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가야물 감야물 단원장사가배일: 加也勿 減也勿 但願長似嘉排日). 조선 순조 때 김매순(金邁淳)이 한양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책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나오는 속담이다.

김매순은 "한가위가 낀 달에는 만물이 다 성숙하고 중추는 또한 가절이라 함으로 민간에서는 이 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에서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을 만들며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 놓는다. 그래서 '더고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 라는 덕담이 오갔다"라고 기록했다.

한가위 음력 8월 15일은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계절여서 한 해중 가장 먹을거리가 푸짐하다. 그러니까 '조상님 덕에 풍년농사 졌다'며 한가위 날 상다리 휘어지게 온갖 음식을 듬뿍 차려놓고 조상님께 고한 뒤 이웃과 함께 실컷 먹고 즐기자는 뜻이 담겨있다. 넉넉함과 이웃의 정겨움이 어우러져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먹을거리가 없고 흥겹게 놀 여유가 없었는가를 엿볼 수 있다. 신라 당시 많은 민초들은 끼니조차 때울 수 없을 정도로 살림이 궁핍했다. 늘 배불리 먹기를 원했다. 오죽하면 일 년 중 하루를 가장 풍성하고 즐거운 한가위 날로 정하고 나머지 일 년 내내 이날 같기만을 기원했겠는가. 삼수갑산을 가는 한이 있어도 일단 오늘 만큼은 마음껏 먹고 즐기자는 심산이었다.

한가위에 뜨는 달은 망월(望月)이라고도 한다. 찬 달은 점점 기운다. 달이 태양을 기준으로 백도를 따라 29.5일이 지나야 다시 망월이 된다.

이 망월이라는 한자를 잘 살펴보자. 원래 뜻은 '달을 바라본다 또는 보름달' 이다. 이 '望'자에 '망할 망'(亡)자가 들어있다. 망월은 꽉 차 최고지만 점차 '망 한다'는 뜻이 깊게 담겨있다. 그러니까 한가위에 보름달을 상정한 것에는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 현재를 충실하게 즐기자는 현실주의도 깔려있다.

특히 한가위 차례 상에 오른 과일도 잘 살펴보자. 대추도 밤도 배도 감도 토란도 보름달처럼 둥글고 잘 영글었다. 밤단자나 대추단자 등 많은 조리음식도 보름달처럼 둥글다. 이 같은 둥근 과일과 음식은 보름달의 둥근 형상을 상징한다.

이처럼 차례 상에 오른 음식이나 보름달 모두 꽉 차 여유가 없다. 비워야 채워지는데 비울 수 없어 더 이상 채울 틈이 없다. 더 이상 발전이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행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한가위 대표음식이 있다. 달떡으로 불리는 송편. 송편은 반달인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송편이 반달 모습을 띈 이유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백제 의자왕 당시 거북이를 가지고 두 나라의 국운을 점쳤다.

백제는 거북이등에 보름달이, 신라는 반달이 씌어져 있었다. 점술사는 보름달인 백제는 다음부터 쇠퇴하고 반달인 신라는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때부터 백제는 서서히 국운이 쇠퇴하기 시작해 나당연합군에 백기를 들고 망했다. 이때부터 신라인들은 한가위에 송편을 반달모양으로 빚어 먹었다고 전해진다. 보름달은 내일이면 기울기 시작해 더 이상의 희망찬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대신 반달은 갈수록 차 집안과 국가의 융성을 기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찬 보름달을 즐기면서도 송편만이라도 반달로 빚어 채움과 비움의 여유를 갖고 밝은 미래를 기원한 것, 기우는 보름달과 차는 반달을 소통시켜 음양의 조화를 이룬 것은 참으로 우리 선조들의 훌륭한 지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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