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전원 기후변화 전문강사

저 집은 저녁때가 됐는데도 왜 굴뚝에 연기가 안 나지? 들에서 아직 안 들어 왔나? 때 거리가 없나? 땔감이 없나? 어디를 갔나? 찬밥으로 때우려나? 걱정도 팔자다. 아주 오래 전 일철의 농촌 저녁나절 모습이다.

그때의 저녁연기는 생존의 표시였고, 잘 지내고 있다는 이웃 간의 인사말이었다. 연기가 오래도록 많이 나는 것이 부의 상징일 때도 있었다. 때 거리가 없어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굴뚝 연기만 내는 집도 있었다.

그 연기는 공해나 온실 가스나 지구온난화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기차를 타고 들판을 달릴 때 멀찌감치 산 밑으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는 서정적 정취를 자아내게 했었는데,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리움의 고향이 되어버렸다.

시류가 바뀌어 이젠 연기에 눈물을 흘려가며 밥을 짓거나 매케한 냄새를 맡아가며 밥상을 차리지 않아도 되도록 생활이 아주 편리해 졌다.

그동안 이산저산 다잡아먹는다는 온돌 아궁이에서 연탄아궁이로 발전하면서 운이 나쁘면 연탄가스를 마셔야 했고, 석유 파동을 거쳐 천연가스와 전기로 급진전하면서 주거문화가 편리해진 만큼 위험부담과 온실가스의 배출은 몇 십 배나 늘어났다.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로 종일토록 내뿜는 공장 굴뚝의 검은 연기는 잘사는 고장의 상징으로 자랑거리요, 지역민의 긍지였으며, 소풍과 수학여행 시 현장체험학습의 제 1순위이기도 했고, 가족 중에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으면 꽤나 으스대기도 했다.

1980년대 말부터 국토의 균형발전으로 전국의 곳곳 산간오지에까지 농공단지가 세워지자 환경과 대기오염문제로 개발의 상징인 검은 연기가 사라지기 시작했으나 없어진 화석연료의 굴뚝 연기 대신에 발산되는 온실 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되고 있어 인류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천연가스와 전기 사용으로 대기오염문제가 조금은 해소되었지만, 유난히도 더웠던 금년 여름은 지난해보다도 열대야일수가 거의 두 배로 증가할 정도였는데, 35℃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폭염경보 속에서도 죽음의 온실 가스는 잠시도 쉬지 않고 배출되었으니 결코 편리함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수십 명의 부채질을 능가하는 선풍기로는 부족해 수십 대의 선풍기로도 당할 수 없는 에어컨의 냉매에서 발생하는 수소불화탄소를 줄이겠다고 줄부채를 사용하던 원시로 돌아갈 수 없듯이, 더워진 지구를 식히자고 모든 일상생활을 아득히 먼 과거로 되돌릴 수도 없지만, 이젠 돌려서도 안 된다.

문명의 이기를 최대한 누릴 줄 알아야만 문화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명도 문화도 인류와 함께 누릴 수 있어야 인류를 위한 문화요 문명이 될 수 있듯이 생활의 편리함도 그 궤를 같이 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큰집 잔치에 작은 집 돼지만 죽는다고 후진국이나 일부 개발도상국들은 자신들의 과오가 아닌 선진국들의 지나친 경제개발 경쟁의 제물이 되어 가뭄과 홍수로 생고생을 하고 있지만, 이런 일로 세계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일부 선진국들은 아직도 자기반성의 기미가 없이 경제 주도권 싸움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금년 11월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G20정상회의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금년 여름의 세계적인 살인더위를 명심해서 온 세계인이 함께 살 수 있는 살기 좋은 지구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회의가 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 바이다.

세계인이 살기 좋은 지구 만들기에 다함께 같은 마음으로 행동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부터라도 과열 경쟁에 목숨을 건 편리함에 대한 욕구를 조금씩만 자제하고, 우리의 무관심으로 머지않아 닥쳐올 지구의 고요한 위기를 한번씩 둘러보는 기회를 가져야겠다. 그래서 지구의 주인으로 그 미래를 걱정하는 이웃이 되어 서로를 일깨우고 격려하면서 위기의 지구를 살리는 지혜로운 시민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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