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 법무법인 '청남'대표변호사

최근 여름 휴가와 추석 연휴로 상담이나 사건 수임이 줄어 귀가가 다소 빨라졌다. 며칠을 일찍 귀가를 하였더니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 녀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빠, 왜 요즘 일찍 들어와, 돈은 잘 벌고 있는거야, 이러다가 우리 가족 길거리로 나앉는 거 아냐"라고 묻는다. 아들 녀석 앞에서 처와 몇 번 사업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들 녀석이 그간 주워들은 것이 많아 어른 같은 걱정을 하나 보다.

1년여전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시작하면서 사무실 책상위에 계영배(戒盈杯)를 갖다 놓았다. 계영배는 '넘침을 경계하는 술잔'이라는 것으로, 술잔의 70% 이상이 채워지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100%가 채워지지 않는다.

중국 제나라 환공이나 노나라의 공자 그리고 조선시대 거상인 임상옥 등이 계영배를 항상 곁에 두며 스스로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고 한다.

계영배를 매일 바라보며, 변호사이지만 돈에 얽매이지 않고 사건의 결과에 과욕을 부리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고자 이를 가져다 놓았지만, 오늘에 이르러서야 필자의 책상 위에 계영배가 있었음을 문뜩 알게 되었다.

너무 바빠서 잊고 있었다고 스스로 위로를 해보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은 더욱 침울하기만 하다. 어쩌면 계영배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또는 잊고 싶을 정도로 세상사에 욕심을 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아직 70%에도 훨씬 못 미쳐 조금 더 채워도 되고 그래야만 최소한의 안락을 얻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너무 바쁘게만 달려온 것 같다.

"욕심이란 무엇인가", "그 욕심의 끝은 어디인가"와 같은 깊은 암자에서 도를 닦는 스님의 선문답이 아니라, 실제 검사,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과욕이 화를 부른다는 말을 절감하게 된다.

검사시절 자신의 피해를 더 많이 보상받고자 없는 사실을 만들어 고소하였다가 오히려 무고죄로 처벌되는 사람을 자주 보았고, 변호사시절에는 자신의 혐의를 벗고자 서류를 위조하고 증인에게 허위 진술까지 시키는 사람을 보게 된다. 얼마나 억울하면 허위 고소를 하고, 허위 증언을 시키겠냐 라고 이해를 하려고 하지만, 그 억울함을 정당한 방법으로 풀려고 하는 욕심을 넘어 어떻게든 이기려는 과욕이 화를 부른 것이다.

사건의 당사자들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얼마전에는 서울 양천경찰서 경찰관들이 실적에 대한 압박으로 피의자들을 폭행해 구속된 적이 있고, 서울의 모 변호사가 성공보수 수억원에 눈이 멀어 수사기관의 체포영장까지 위조해 의뢰인의 상대방을 감금해다가 구속된 적도 있었다.

왜 이렇게 상상하기도 힘든 일들이 발생할까? 이들이 본래 비정상적이고 욕심이 많아서 그런가?

욕심이 지나쳐 그것이 과욕이었음은 지나고 나면 알겠지만, 지금 당장은 자신의 욕심이 일을 위한 정당한 의욕인지, 과하고 추한 탐욕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과욕이라는 말 자체가 후회 되는 결과에 대한 반성이지 지금 진행중인 일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완연한 가을의 문턱에서 먼지 가득한 계영배를 다시 수건으로 깨끗이 하여 바로 놓아 보며, 스스로 이미 70%는 채웠다고 위안하고, 앞으로 조금은 덜 벌더라도 정당함을 지키고, 자기 자신 이외의 주변을 돌보고 베푸는 사람이 되고자 하지만, 이것이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다만 이러한 욕심은 지나침이 오히려 덕이 될 것이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 choiyh6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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