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십 수년 전만 해도 미국이나 유럽 여러나라 할인점 가전제품 진열대 말석은 늘 중국제품이 차지했다. 우리나라 상품은 중국산에서 멀찌감치 그런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가운데 중국 브랜드 '퍼스트 라인'이라는 브랜드가 생각난다. 투박하고 조잡해 보이던 제품디자인이 단연 두드러졌고 당시 중국의 기술수준을 여지없이 드러냈던 열악한 품질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가격에 힘입어 나름 팔리고 있었다. 서양에 어디 부유한 사람만 살고 있는가. 저소득층과 외국에서 온 이민자들 그리고 너나없이 쪼들리는 유학생들로서는 그런대로 쓸만하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자제품 메이커들이 일본에게는 다소 뒤쳐지지만 중국산만큼은 깔보며 자부심을 느꼈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제는 어깨를 겨루는 동시에 일부 품목에서는 우리나라를 추월해 버린 상황으로 반전되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통상교역 위상을 구축했지만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하였다.

종전 '메이드 인 차이나'에서 이제 '디자인드 바이 차이나'로 특히 디자인 개념을 강화, 고급화하려는 중국제품의 위협은 날로 거세진다.

이제 우리나라 가전제품을 비롯한 주력 수출품들은 가격경쟁에서 중국에 밀리고 성능 역시 일본의 건재로 최첨단권 안착이 아직 더딘 모양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를 앞세운 중국산의 수준향상, 위상제고는 벌써 오래전부터 엄청난 탄력을 받으며 승승장구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세계의 공장' 이었던 '메이드 인 차이나'를 넘어 어느새 '디자인드 바이 차이나'가 우리생활 구석구석 빈틈없이 침투하고 있다. 농·축·수산물과 의류, 생활용품, 완구류 에서부터 온갖 공산품과 고도의 기술집약이 요구되는 아이템에 이르기까지 그 파급력은 상당하다.

우리나라 각 관광지나 매장에서 팔리는 기념품에서도 중국산 꼬리표가 선명하다.

가장 토속적이고 한국적이어야 할 관광기념품 분야까지 파고든 중국산의 물결은 예사로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그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구입한 기념품이 중국산이라고 할 때 외국인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일본은 관광기념품만큼은 국내제조 원칙을 지킨다는데 그 노하우가 궁금하다. 대체로 제조단가가 맞지 않아 중국산 수입품에 의존한다지만 관광기념품만큼은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엄격한 품질관리와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관계당국의 보증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기념품은 먹고 마시거나 일정기간 사용하다 소모되는 일반제품에 비해 관광상품의 생명력과 내구연한은 거의 영구적이다.

여기에 붙어있는 중국산 라벨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 우리나라의 이미지와 경쟁력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강력한 촉매가 되는 까닭이다.

수입개방이 피할 수 없는 추세라고 한다면 여기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예측가능하고 타당, 지속적인 정책제시가 앞서야 한다. 그것이 정부의 도리이고 최소한의 책무임에도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는 동안 불신의 벽만 키워간다.

가령 어느 나라의 어느 제품이 수입자유화 품목으로 지정된다면 최소한의 대비기간을 주면서 미리 공지해 생산자 스스로 다른 품종으로 전환하든가 아니면 국내제품이라는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품질 고급화, 차별화된 전략으로 승부를 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의무를 정부나 정치권은 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날이 거세어질 중국산 파고에 맞서는 방안은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사스나 신종 플루 위기 때 검역강화, 치료체계 및 시설 조기구축, 의심환자 철저 추적관리, 국제공조운영 그리고 전에 없이 자상하고 신속했던 대국민 홍보 등이 그 핵심이었듯이 엄청난 중국제품 쓰나미도 질병관리 대책을 통상차원으로 옮겨 같은 맥락으로 차분히 지혜를 모아 협조해 나간다면 폐해 최소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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