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연국 충주대교수

이산가족, 듣기만 해도 가슴이 아리고 애절해지는 말이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한 지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때 헤어졌던 가족들이 서로 만났다. 당시 갓난아기로 전쟁터로 나가는 아버지의 얼굴을 알아보지도 못한 채 서로 떨어져야 했던 안타까운 이도 금강산에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첫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 9월에 남북한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의 서울·평양 교환 방문으로 이뤄졌다. 그 때의 감개무량은 마치 금방 통일이 이뤄질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지다가 2000년 8월에 재개되고 2001년 2월 까지 두 차례 더 교환 상봉이 이뤄졌다. 남북한에서 개최되던 상봉행사는 2002년부터 지금까지 금강산에서만 개최되고 있다. 어떤 때는 화상상봉이 이뤄지기도 해서 보는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지난해 9월에 이뤄진 상봉행사 이후 13 개월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남북에서 100명씩밖에 신청할 수 없도록 북한이 인원을 제한했고 그 첫 만남이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3명을 제하고 97명의 북쪽 신청자가 남한의 가족을 상봉한 것이다. 남쪽 신청자들은 11월 3일 북쪽 가족을 만나게 된다.

텔레비전을 통해 전해지는 이산가족의 애절한 만남의 현장은 지켜보는 모든 이들을 가슴아프게 했을 것이다. 해를 더해갈수록 더욱 안타까워지는 것은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노인들이라는 사실이다. 96세 83세 77세 등 심신이 쇠약할대로 약해진 처지이고 갓난아이였던 이가 61세의 노인이 된 긴긴 세월의 흐름이 있었다. 그래도 당시의 잊지 못할 생생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산의 한을 통곡하는 할머니의 흐느낌에 가슴이 찡해진다.

이산가족 상봉을 보는 젊은이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이산의 아픔을 직접 겪고 있는 노인들의 심정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들것이다. 그들 젊은이들의 생각이 우리 사회를 더욱 안정되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이산가족 없는 나라가 된다는 마음가짐이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상봉행사에는 한국군 출신 4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 분들은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자로 처리되어 남한의 가족들은 그동안 제사를 지내오기도 했던 가족을 만났기에 상봉의 기쁨이 훨씬 컷을 것이다.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는 5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그들의 상봉을 정부는 적극 나서야 한다. 국군포로의 상봉에는 대가를 지불해도 된다. 그들은 우리의 국민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위해 전쟁터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송환이나 가족의 상봉을 위해서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쌀이든 비료든 제공하고 그들과 가족들의 애타는 그리움을 풀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도리다.

정부가 추정하고 있기로는 전후 납북자는 517명, 전시 납북자는 10만 명을 웃돌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이들의 생사확인 뿐만아니라 그들 가족의 상봉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민을 보호하고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대한민국 정부의 가장 큰 책무가 아니겠는가.

6·25에 참전한 미국이 당시 북한땅에서 전사한 미군의 유해를 발굴하기위해 수천만 달러를 제공하고 수십 차례에 걸쳐서 발굴단을 파견하지 않았는가. 또 남아있는 유해발굴을 위해서 북한측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에 남아있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그리고 북한 땅에 묻혀있는 전몰장병과 그 가족들에게 부끄러워해야한다. 그들에게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것이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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