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의 세상읽기]

지난달 31일. 강원도 설악산에서 가을과 겨울이 만났다. 가을에 곱게 물든 단풍잎 위로 겨울의 하얀 눈이 살포시 앉은 것이다. 계절의 만남은 또 다른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설악산과 깊은골을 같이 한 금강산. 그곳에서는 남과 북의 혈육이 만났다. 통한의 60년을 기다려왔던 설레임과 기쁨 속에서의 만남이었다. 그러나 이산의 아픔과 한 맺힌 절규는 끝내 회한과 오열 속에서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이날 금강산 자락엔 노래가 울려 퍼졌다. 누가 먼저라 할 것이 없었다. 그 노래는, 어릴적 고향집에서 가족들이 모두 함께 불렀던 동요였다. 이들은 생이별의 피멍을 안고 살아왔던 분단의 한을 '고향의 봄'으로 녹였다. 또 '반갑습니다'로 그동안 그리웠던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아내기도 했다. 이날 이산가족들의 만남은 '오빠 생각'으로 이어져 결국은 '꿈에 본 내고향'으로 함께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옛부터 동요는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가 즐겨 불렀다. 노랫말이 아름답고 따라 부르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지 어릴적에 부르던 동요는 잘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산가족들이 60년이란 단절의 벽을 허물고 함께 동요들을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민족은 흥이 나면 노래를 잘한다. 또 어깨를 들썩이며 덩실 덩실 춤도 잘 춘다. 노래하고 춤추다 보면 모두가 한 마음이 된다. 우리는 흥에 겨워서 뿐만이 아니다. 때론 힘들고 고단한, 척박한 삶도 한 가락 노래로 이겨냈다. 노래는 시대상이 반영되고 사회를 풍자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가사 또한 암울한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기도 한다. 때론 위정자들을 비난하는 은유적인 노랫말로 바꾸어 부르기도 한다.

동요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동요의 가사를 바꾸어 부르면 더욱 빨리 퍼질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어린 아이들이 잘 부르는 '곰 세 마리'란 동요가 있다.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아빠곰은 뚱뚱해/ 엄마곰은 날씬해/ 애기곰은 너무 귀여워/ 으쓱 으쓱 잘한다.' 라는 노래다. 참으로 행복한 가정과 가족의 사랑이 포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인가.

이처럼 아름다운 동요인 '곰 세 마리'가 북한에서는 3대 세습을 비꼬는 내용의 가사로 패러디됐다. 이 노래가 함경북도 회령에서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왕조를 3대째 이은 뚱뚱하고 미련한 '곰 세 마리' 때문에 헐벗고 굶주린 북한 주민들의 한이 서린 '원망가'임에 틀림없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회령시 오산덕중학교 교실과 화장실에서 '곰 세 마리'의 가사를 바꾼 쪽지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바뀐 가사는 이랬다. "한 집에 있는 곰 세 마리가 다 해먹고 있어/ 할배곰(김일성)/ 아빠곰(김정일)/ 새끼곰(김정은)/ 할배곰은 뚱뚱해/ 아빠곰도 뚱뚱해/ 새끼곰은 미련해"라고.

이같은 쪽지가 발견되고 노래가 퍼지자 북한 보안당국은 '반동 유인물'로 규정하고 수거한 뒤 출처를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북한의 3대 세습과 인권유린, 천안함 폭침과 핵 개발 같은 북한체제의 문제점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청년 래퍼(랩 부르는 가수)들이 있다.

이들 그룹 이름은 '목내노사'다. 목내노사란 '목숨을 내놓고 노래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란다. 목내노사는 최근 '천안함' '강제수용소' '나도 가끔은 니 아들이고 싶어'등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5곡의 노래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엔 관심이 없다고 한다. 굶어 죽고, 꿈과 희망조차 제대로 가질 수 없는 북한 아이들을 위해 이들 래퍼들은 북한이 바뀔 때가지 계속 노래를 하겠다는 것이다.

뚱뚱하고 미련한 '북한의 곰'들에겐 '세습'이외엔 아무소리도 안 들릴 것이다.

아빠곰과 엄마곰 앞에서 으쓱 으쓱 잘하는 애기곰 처럼, 북한 아이들도 꿈과 희망을 갖고 자라나야 하는데…. / 前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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