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학 충주여고 교장

성웅(聖雄) 이순신 장군이 자기 임지(任地)의 특산물인 통영(統營) 부채를 한양의 고관대작 부인들에게 선물했다는 <난중일기>의 기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 목적이 서울의 특권층에 친(親) 이순신 그룹을 구축하기 위함이었으니 요즘 기준으로 보면 완전 뇌물 공여가 될 수밖에 없는 행위다. 그것도 한창 난리 중이었으니,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는 부패 군관으로밖에 치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설마 개인의 영달을 위해 그런 부끄럽고도 안이한 범법 행위를 저질렀겠는가. 장군의 일생일대 목표는 왜선(倭船)의 완파(完破)다. 그런데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군통제의 직임이 또다시 흔들려서는 안 되었고, 그 흔들림의 예방을 위해서는 권문세가들의 환심을 사두는 것이 필요했을 뿐이다.

임진왜란 전사(戰史)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이순신 장군의 전과(戰果), 23전 23승의 공적 뒤에는 이렇듯 그의 인간적인 고뇌가 묻어나는 처세가 있었다. 지금 안목으로 보면 충무공은 적절히 자신을 홍보했고, 홍보물도 제공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홍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과학 문명의 발달로 신기술 매체가 속속 등장하면서 홍보의 주체와 객체마저도 분간하기 어려워 졌다. 게다가 속성상 홍보에 분칠된 의도적인 가식과 허위를 가려 내고 순수한 '정보'에 접근한다는 것은 일반 서민의 입장에서는 거의 불가능해 지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양심에 입각하여, 자기를 정확히 알리고 선하게 발전하겠노라는 취지의 홍보도 불신과 경멸의 대상으로 매도되기 십상인 세상이다.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 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좋은 평판을 형성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알아라, 가치를 높여라, 자신을 홍보해야 한다.'면서도 자기 피알 시대인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뜻을 잘못 알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자기 입으로 떠벌린다고 해서 홍보가 되는 것이 아니고, 떠벌리는 것과 침묵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하며, 제대로 된 홍보는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게 해 주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닫힌 세상에서는, 홍보는 열고, 정보는 닫는다. 홍보는 짙은 화장(化粧) 속에 웃음을 띠고 나타나지만 정보는 나신(裸身) 그대로의 모습이다. 건장한 육체미라도 과시할 자신이 있으면 모를까 나신을 아무데고 드러낼 용기도 재간도 없을 경우, 정보를 꽁꽁 묻어 두는 대신 홍보에 열을 올린다. 홍보 대상들을 우롱 내지 현혹해서라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비윤리적인 저의가 담겨 있기 때문에 공공의 적이라 불릴 만하다.

하지만 현대인은 홍보와 정보의 홍수를 피할 재간이 없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국가든, 기업이든, 지자체든, 개인이든, 심지어 학교도 이 홍수 속에서 부유(浮游)한다.

<차일드 헤럴드의 편력>이라는 자전시에의 칭송이 온 유럽에 자자하자,'어느 날 일어나 보니 유명해 졌더라.'라는 말을 남긴 영국 시인 바이런이,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그리스 국가의 홍보대사로 1820년대 임용된 적이 있다. 태생은 영국이지만 맑은 하늘, 푸르른 올리브 나무, 손에 잡힐 듯 부드러운 공기가 투명한 그리스를 제2의 조국이라고 공공연히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시인으로서는 유명했지만 술과 값싼 사랑으로 매우 방탕했고, 방랑벽이 있는데다 기행(奇行)을 일삼는 바람에 오히려 뜻있는 사람들에게 빈축을 사는 인물이었다.

대중들에게 진솔한 정보를 제공하여 밝고 윤택하게 하는 홍보, 그것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일단은 마음가짐이 맑고 따듯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홍보가 아니라 사술(詐術)이 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