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一葉知秋(낙엽 한 잎이 가을을 알린다).하지만 요즘 낙엽이 인간들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고 있다. 심지어 수난을 당하기도 한다. 화사함을 지속하지 못한 채 추락해 앙상한 가지만남겨 놓고 ,바람에 이리저리 휘둘려 갈 곳도 찾지 못하며 거리를 을씨년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낙엽은 또 슬프다. 분위기 잡는 군상들의 구둣발에 마구 짓밟혀 숨조차 쉬기 어렵다. 차량바퀴에 갈리고 갈려 흔적 조차 찾아볼 수 없다.

때론 불쏘시개로 최악의 운명을 맞기도 한다. 낙엽의 존재가치가 이 정도일까. 김광균의 '추일서정(秋日抒情)'에서처럼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인가?. 가치없고 쓸모없는 쓰레기인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낙엽은 우선 나무를 보호하는 생존본능의 생리현상이다. 나무는 뿌리에서 수분을 흡수하고 잎은 숨구멍으로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내뿜는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탄수화물 등 영양분을 얻는다. 그런데 잎 숨구멍에서는 산소 뿐 만 아니라 수분도 빠져나가는 것이 잎새의 큰 걱정거리다.

활엽수는 특히 겨울에 뿌리의 수분흡수력이 떨어지는데다 땅속 물이 부족해 최대한 수분유실을 막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분부족으로 고사될 우려가 크다.

그러니 수분을 증발시키는 잎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이때가 되면 '에틸렌'과 '옥신'이란 식물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잎자루와 나뭇가지 사이에 '떨켜'층이 형성된다. 이 떨겨층의 세포조직은 연약한데다 스스로 파괴되면서 잎새를 떨어뜨린다. 잎새가 낙엽이 되면 나무(활엽수)의 겨울잠도 시작된다.

낙엽은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다. 낙엽은 자신을 분리시킨 나무를 벌거숭이로만 남겨놓지 않는다. 수고천척 낙엽귀근(樹高千尺 落葉歸根).'나무가 아무리 크고 무성해도 떨어진 잎새는 뿌리로 돌아간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탄수화물 덩어리인 낙엽은 수소와 탄소 등으로 분해되어 땅속에 남아있다 뿌리로 흡수된다.자신을 나아준 어미나무만이 아닌 모두 식물들의 뿌리와의 만남을 운명적으로 기다린다.

낙엽은 숲속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계곡 물에 사는 조류나 분해미생물 그리고 곤충의 유충에게 자신을 맛있는 먹을거리로 흔쾌히 제공한다. 특히 분해미생물은 낙엽의 부패를 어렵게 만드는 '셀롤로오스'성분을 분해시킬 '셀롤라아제' 효소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미생물이 낙엽을 덮치면 순식간에 흔적 없이 분해해 버린다. 그리고 그 배설물이 또다시 질좋은 거름이 되어 뿌리로 흡수된다.

다만 몇 년전부터 많은 미생물들이 잦은 산성비에 죽어 낙엽 분해율을 크게 떨어뜨려 낙엽이 몇 년 째 썩지 않고 있다. 낙엽은 본의 아니게 다소 생태계를 혼란시키고 있어 이 또한 몹시 괴롭다.

낙엽은 단순히 노화로 인한 죽음이 아닌 부활을 예고한 죽음이다. 스치는 바람에도 수많은 잎새들이 몸을 떨며 떨어지는 것 역시 아니다.

낙엽은 가을의 황량함의 대변자도 아니요, 초라하고 볼품없는 가을의 마지막 모습도 아니요, 버림받고 땅위에 흩어진 것도 아니요,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의 꿈마저 가져가 버린 몹쓸 놈도 아니다.

낙엽은 화려한 초록의 기억과 오색창연한 단풍의 자태가 참으로 까마득하게 멀리 사라져 버린 채 '죽어버린 꿈의 시체'는 더 더욱 아니다.

낙엽은 파괴와 창조를 거듭하는 순환적 자연의 법칙이다. 잎으로써 할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영겁의 혹독한 시련을 거친뒤 마치 자신을 태워 어둠속에서 광명을 밝히는 촛불처럼 자신 모두를 내어 준다. 수많은 성분으로 분리되면서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헤쳐모여'를 반복하고 있다.

잎새가 추락하는 과정(落葉)은 결국 앙상한 가지만을 남겨놓기 위함이 아니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낙엽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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