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세상]이원복 국립광주박물관장

11월은 가을과 겨울이 교차되는 달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기에 조금은 서운하면서도 마지막 달은 아니어서 조금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올 여름은 무더위와 잦은 비 등 견디기 힘든 시간들도 없지 않았다. 한 해를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산 나무들은 한껏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천자만홍(千紫萬紅) 아름다운 옷들로 갈아입는 중이다. 10월은 그야말로 문화의 달답게 각종 행사가 개최되어 발길 선택의 어려움을 절감했다.

'2010 광주비엔날레 만인보(9.3-11.7)도 이번 주면 끝난다. '민족 문화유산의 보고'인 간송미술관에서 가을 기획전인 '화훼영모(花卉翎毛)'(10.17-10.31)를 어김없이 개최했다. 국립광주박물관의 리노베이션을 마무리 해 새 모습 기념특별전인 '바람을 부르는 (9.4-10.24)새'와 짝을 이룬 전시라 하겠다.

올 특별전 중에서 압권은 단연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려불화대전 - 700년 만의 해후'(10.12-11.21)이다. 용산 개관 5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준비 기간이 2년을 넘겼다. 친근미 있는 단아한 형태, 호화로운 금니에 원색 위주의 화려한 채색, 유려하며 섬세한 필치, 높은 격조와 기량,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독자성 등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정화(精華)이자 백미(白眉)로 상찬된다. 고려청자 빚은 고려의 세련된 미감(美感)이 빚은 고려불화는 감탄사가 절로 나며 황홀경에 빠져든다.

전시 부제가 시사하듯 이들 고려불화 대부분은 외국에 유출되었으니 출품작 중 일본에 28처, 독일과 미국 및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 등 8처, 국내 8처 등 한 자리에 모으는 일 자체도 용이한 일이 아니다.

깨달음의 존재 부처, 수월관음 등 중생의 구제자 보살, 1235년과 그 이듬해에 걸쳐 제작한 5백나한도로 대표되는 수행자의 모습 나한, 같은 시기 서하(西夏) 및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의 불화를 살필 수 있도록 비교 전시한 이웃나라의 불보살, 조선 초기의 불화를 포함시킨 전통의 계승 등 다섯 갈래로 나눴다. 이들 불화 외에 고려시대 금동불 등 조각과, 사경, 불화에 등장하는 정병 등 불구 등도 포함해 출품작은 모두 108점에 이른다.

화려하고 장엄한 고려불화의 존재가 만천하에 알려진 것은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나라에 위치한 야마토분가간(大和文華館)에서 개최한 '고려불화'(1978,10.18-11.19) 특별전을 통해서이다.

당시 53점의 불화와 17점의 사경이 출품되었다. 이에 앞서 한국회화사의 초석을 마련한 이동주(1917-1997) 선생은 1970년대 초부터 일본 속의 우리 그림들을 찾아 지면에 발표했다. 이들 고려불화들은 한 때 막연히 송·원대 중국불화로 간주되었다. 이후 1993년 호암갤러리에서 국내 최초로 개최한 '고려불화'전, 1995년 '대고려국보전'에선 20여 점의 고려불화도 공개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몸담고 있을 때인 1985년 가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개최한 '조선통신사전'에 현지 관리관으로 다녀왔다. 이 때 도쿄국립박물관장의 소개서를 들고 네즈미술관을 방문해 격납고에 비장된 지장보살도 등 고려불화를 처음 실견할 수 있었다.

삶의 여정에 이렇게 가슴 뛰고 설렘이 몇 번이나 될까? 위대한 걸작과의 만남을 통한 감동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니 진행형으로 늘 되살아남을 절감하게 된다.

바로 그 불화 또한 이번 전시에 출품되어 재회의 기쁨이 각별했다.

지난해 10월 말 고려불화대전 유물대여 교섭 및 조사를 위해 쇼보지, 교쿠린인, 나라와 교토국립박물관 등을 방문 16점을 세밀히 살펴보았다. 작은 사찰 소장품인 경우 도난에 대한 우려로 국립박물관에 기탁되어 있어 조사가 용이했다. 이들 모두를 이역異域 아닌 탄생지에서 다시 보게 되니 감개무량하며 코끝이 시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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