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문학평론가

프랑스 '미식(美食)전통'이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위시하여 여러나라가 공동 신청한 '매 사냥'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유산등재가 통과한 만큼 어찌보면 너무 쉽게, 무더기로 통과한다는 느낌도 들지만 문화유산 등재, 보호는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이른바 근대화 과정, 개발도상의 와중에서 간단없이 멸실, 파괴되던 유, 무형 문화유산과 전통에 눈을 돌린 시기가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알뜰하게 보호하고 소중한 자산을 지켜가야 하는 만큼 각별한 관심은 반가운 일이다.

프랑스의 미식 전통은 프랑스 전 국민이 음식과 식도락에 대하여 갖는 열정적인 관심이나 일찍부터 수립된 음식의 명성과 레시피를 비롯한 노하우 그리고 요리사를 단순한 기능인으로서가 아니라 예술가, 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사회분위기 등이 바탕이 되었다. 파리가 프랑스의 행정, 경제수도라면 중부도시 리옹은 음식의 수도로 꼽힐만하다.

리옹의 음식문화는 르네상스 시기를 거쳐 16세기 말∼17세기 초 본격적인 전기를 맞이하였다. 프랑스 왕 앙리 4세가 이탈리아 명문가 출신인 마리 드 메디치를 왕비로 맞이하면서 결혼식을 이탈리아로 통하는 요충지 리옹에서 열었다. 새 왕비는 고국 이탈리아로 부터 요리사와 음식재료를 들여와 프랑스에 새로운 음식들을 대거 선보였다.

이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조리법과 식자재들이 프랑스로 유입되었다. 개인용 포크를 사용한 것이나,오늘날 테이블 매너의 교과서로 꼽히는 프랑스 식탁 에티켓이 정착된 것도 역시 이 무렵 이었다. 다른 문화를 혼융하여 독특한 자신의 문화를 만들어 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프랑스의 음식 문화는 그때까지만 해도 한수 위였던 이탈리아 음식과 융합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엄격, 공정성으로 이름 높은 식당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3개를 얻는 영광을 위하여 요리사와 식당주인이 쏟는 노력과 정성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오래전 자신의 레스토랑 평가가 떨어진 것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프랑스 식당주인의 사례가 그 단적인 경우이다. 프랑스 미식 전통은 반드시 비싸고 귀한 음식을 선호, 탐닉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물론 프랑스인들이 선망하는 철갑 상어알, 송로버섯, 푸아그라 즉 거위 간으로 만든 전채요리 같은 명성 높은 메뉴에 대한 열광도 대단하지만 식사를 우리처럼 황급히 먹고 마시는 긴박한 행위로 간주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삶의 여유를 음미하며 대화와 나눔의 시간으로서의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서 프랑스 미식전통은 힘을 얻는다. 전채, 주 요리 그리고 디저트와 치즈, 커피, 코냑 등 코스별로 시간차를 두고 나오는 탓에 전체 식사시간이 길어 보인다. 우리나라처럼 모든 음식을 한 상에 차려놓고 동시다발적으로 먹는 공간 전개형이 아니다. 시간계열형 식탁구성의 이점이 거기 있다.

과거 식탁에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하게 하고 오로지 밥 먹는 일에만 열중하게 하던 우리나라 어른들의 밥상교육은 아무래도 합리적이지 않아 보인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부실한 음식에 대한 아이들의 불평불만을 원천봉쇄하려는 의도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설렁탕, 자장면을 5분 안에 먹고 나서 곧바로 일에 뛰어들던 우리사회 풍경이 겹쳐지면서 프랑스 미식전통의 의미를 새롭게 음미해 본다.

지금처럼 삶이 속도감이 빨라지고 가족끼리 모일 기회가 적은 환경에서 매일 저녁식사 한차례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일주일에 한번 만큼은 온 가족이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소박하지만 정성들인 음식을 앞에 놓고 즐겁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그려본다.

삶의 고단함과 각박한 사회의 냉혹함을 위로하고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식탁이 바로 '미식전통'의 핵심이며 바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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