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개념(槪念) · 정우진 철학박사

논쟁 도중에 상대에게 들을 때, 가장 기분 나쁜 말 중 하나가 개념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개념을 분명히 하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신은 기본도 안 되어 있군요.'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역으로 상대의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을 때는 혹은 상대의 말에 대한 답변이 어려울 때는 개념을 분명히 하라고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난 도대체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개념을 정확히 사용해 해주십시오.'

추정컨대 이 말을 들으면 상대편은 적잖이 흥분할 것입니다. '상대를 흥분시켜라'는 것은 잘 알려진 논쟁술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개념을 정확히 사용하라는 말은 시간을 버는 것 외에도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논변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당연히 그것이 아주 이해하기 쉬운 것임을 말해야 합니다. 우선 '아니 왜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죠?'라고 말하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청중의 동의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마찬가지로 잘 이해하지 못했을 청중도 있을 것입니다만, 그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지나는 길에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청중을 내 편으로 만들어라.'

청중의 반응을 유도한 후에는 정확하면서도 쉬운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다들 아시듯이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논변에서의 정확함은 말 그대로의 정확함은 아닙니다. 그건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정확성입니다.) 어떻게 보면, 개념을 분명히하라는 지적을 받은 순간은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때입니다. 비유의 전법이 이 때 사용하기에 좋은 수단입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해보겠습니다.



개념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을 받았을 때는 개념을 나누고 묶은 후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으로 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유연애 사상을 설파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죠.

A: 사람들이 연애를 하는 것이 왜 문제죠. 결혼 한 후에 연애를 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B: 당신의 말은 자유연애라는 이쁜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은 성적으로 우위에 있는 이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킨다는 가정위에 서 있군요.

A: 난, 일부일처제와 일부다체제같은 것은 문화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 거죠.

B: 쟁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자유연애에서의 선택이 바로 일부일처제와 일부다처제로 귀결되는 것인가요. 그건 또 다른 쟁점같은데요.

A: 내 대답이 쟁점을 옮겨간 것처럼 들리는 것은 당신이 정확하지 않은 개념을 사용했기 때문이에요. 개념을 정확히 사용하고 근거위에서 주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B: 도대체 무엇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죠. 당신은 자유를 주장하지만 외국에서 여자를 데려와서야 겨우 결혼할 수 있는 이들에게 그게 무슨 뜻입니까. 당신의 주장에는 그와 같은 차별은 문제가 안 된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즉, 당신은 성적인 위선적 평등주의자라는 말이에요. 내 말은.

B는 A의 개념을 분명히 하라는 지적에 대해 A의 주장에 전제돼 있는 생각을 정리하고 개념을 지우면서 비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성적인 위선적 평등주의자가 그 것입니다. 물론 이 것보다 더 화끈한 표현도 생각할 수 있을 듯합니다. 어쨌든 B는 A의 지적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이끈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한 번의 기교로 논쟁이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논쟁의 과정은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입니다. 지속적으로 상대를 모순에 빠트리고 자신의 입장을 지켜내는 과정을 통해서야 겨우 도달하게 되는 마라톤과 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음 주에는 논쟁이라는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기교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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