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눈-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어떤 큰일을 하려는 사람을 격려할 때 마음을 비우라는 말을 자주한다. 이는 사적인 욕망을 버리고 목적에 좀 더 순수 충실 하라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같은 맥락이리라.

마음을 비우는 일은 부질없는 원망이나 미움을 버리고, 쓸데없는 고집이나 욕심을 버리는 것이며, 욕망이 아닌 소망이어야 한다. 욕망이 가득한 사람도 마음속에 아름다움을 더하면 소망을 이룰 수 있으나, 그 소망에서 자기도 모르게 아름다움이 빠져나가면 다시 욕망으로 돌아오게 되어 마음은 결코 비워지지 않는다.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이해가 되겠지만, 실천은 그렇게 쉽지 않아서 어떤 이는 사활을 걸면서까지 부족한 것 채우기에 기를 쓰기도 한다. 이런 이들 속에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한 그 사람도 들어 있다.

고위직 임용을 위해 면접에 참가하는 날 아침 초조해하는 아버지를 격려하면서 중학생의 딸이 "아빠, 마음을 비우세요" 하더란다. 어린 딸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서 그런지 으뜸으로 뽑혔단다.

링컨이 상하의원과 주지사 그리고 대통령이 되고자 출마를 멈추지 않았던 것은 다인종 미국 사회의 인종갈등을 해소해 보겠다는 일념 외에는 개인적인 모든 것을 비웠기에 칠전팔기로 세월은 오래 걸렸어도 온 국민의 소망을 이룰 수 있었다.

꿈과 희망처럼 바라는 게 없으면 살맛이 안 난다는데, 동물세계에서도 생존경쟁에서 이겨야 허리 펴고 으스대듯이 사람도 세상을 살면서 무엇인가를 꼭 이루어 보겠다는 간절한 소망과 이를 위한 목적의식으로 용기 얻어 최선을 다해 경쟁에서 앞장서야 살맛이 난다.

성취욕이 없으면 일 할 의욕도 줄어들고, 손에 잡히는 소득이 없으면 숨도 쉬지 않으려는 세상이 되었는데, 개인적인 욕망보다는 타인을 위한 소망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니 기가 찰 일이다.

우리 생활의 패러다임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순수하던 기부문화도 변질되었고, 대가 없는 수고는 약으로 쓸려고 해도 찾아볼 수가 없으며, 어쩌다 베푸는 인정에도 받는 사람들은 망설이거나 의구심을 앞세우고 있다.

마음을 비우라는 것은 세상을 순리대로 살라는 것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작은 말이 커서 큰 말 노릇을 하는 것처럼 세상사가 많은 사람들의 소망처럼 이루어졌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다.

싸우면서 크는 철부지들이 무엇 때문에 코피를 흘리면서 며칠씩이나 어금니를 악물고 벼르겠는가. 꼬마대장이나 골목대장에 올라서서 메아리도 없는 포효 한번 지르면서 성취감을 맛보고 싶었으리라.

경쟁의 열기를 돋워주는 욕망이 있기에 비약도 있고, 돌연변이도 나오고, 영역도 넓히고, 자기만족에 도취되기도 하고, 먹고 마시며 즐기고, 안 해본 일 없다는 체험의 대가가 되기도 하고, 비행의 끝에서 나락으로 추락도 해보고, 비명횡사도 거기서 비롯되고, 개천의 용도 그런 것인가?

이런 과정이 어쩌다 순수하지 못해서 생기는 부산물이 인류에게는 무용지물임을 너무도 잘 알면서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그칠 줄 모르고 분출되는 불순물로 침전된 욕망의 샘을 정화하지 못함이다.

탔던 배 꺼지는 순간에도 구명대 서로 양보하며 '제발 너만은 살아다오'할 그런 친구가 많아지기를 기대하는데, 마음을 비우면 남을 위한 소망이 잘 이루어진다는데, 이런 말을 빌리는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배려하는 생활의 실천이 바로 그 해답이 될 것이다.

배려를 실천하려면 내 소중한 것을 버려야 하고, 내 몫을 덜어야 하고, 내 자존심과 부귀공명, 명예와 지위, 그리고 자존과 자만까지도 훌훌 떨어버려야 하니 마음은 저절로 비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꿈과 희망과 욕구가 욕망으로 바뀌는 욕심 더하지 말고, 천국의 긴 젓가락처럼 남을 위해 내 것 먼저 내놓고 간절히 소망하면서, 내 모든 일의 목표가 이웃에게 보탬이 되는 결과로 매듭지어지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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