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의 세상읽기]

가을 마당 사립문을 밀고 겨울이 들어섰다. 늦가을의 햇볕 꼬리가 빠져나간 마당엔 찬 기운이 돈다. 겨울바람에 날씨가 차다. 방문을 꼭 닫고 앉아 있어도 외풍이 세다. 바깥의 찬바람 보다도 외풍의 추위가 더욱 가슴 속을 파고든다.

우리 주위엔 한 겨울 외풍에 떨고 지내는 어려운 이웃들이 많다. 인정이 끊긴지 오래된 독거노인,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힘겹게 생활하고 있는 소외된 이웃,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는 소년소녀가장들. 경로당과 양로원등 주위를 둘러보면 안타까운 불우한 이웃들이 너무도 많다.

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각 가정은 물론 사회 곳곳에서도 겨우살이 준비를 한다. 서민들도 겨우내 먹을 김장은 물론 난방용 기름을 넣고 겨울 옷을 준비한다. 집안 곳곳 찬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창문 틈새를 막기도 하며 가족 사랑을 만끽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은 연말을 맞아 후원금으로 정치겨울을 준비하며 뿌뜻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외풍에 떨며 어렵게 생활하는 불우이웃들은 겨우살이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추운 겨울 이들의 외풍을 막아 줄 문풍지는 크고 거창한 담벼락이 아니다. 절절 끓는 방바닥도 아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정다운 마음이 듬뿍 담긴 연탄 한 장과 따뜻한 도시락 하나면 충분하다. 이웃사랑 속에 녹아든 따뜻함의 훈기가 감도는 방안에선 외풍의 추위를 느낄 수없기 때문이다.

예부터 우리들은 콩 반쪽도 나누어 먹었 듯, 일상의 삶 속에 '나눔과 베품'의 미덕이 깊게 뿌리를 내린 미풍을 자랑해 왔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엔 나락을 남기고, 감나무 가지엔 까치밥을 남겼다. 하물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콩을 반쪽으로 나누고, 빈 쌀독을 걱정해 주는 마음 씀씀이에 소홀할 수 있었겠는가.

올해도 여느 해와 같이 사회에서 소외되어 힘겹게 생활하고 있는 이웃을 돕자는 성금모금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중부매일도 충청북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내년 1월31일까지 이웃돕기 성금모금운동을 벌인다. 또 구세군도 빨간 자선냄비를 거리에 설치하고 풀뿌리 나눔 문화를 확산하며성금을 모금하고 있다.

이웃돕기 성금모금운동은 '모금 운동' 보다 '성금의 사용'이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고사리 손부터 장삼이사들까지 십시일반 사랑으로 모금된 '나눔의 성금'이기 때문이다. 나눔의 작은 조각들이 모여 베품의 큰 온정과 사랑으로 승화될 때 나눔의 손길들은 작지만 큰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늘 그랬듯이, 매년 작지만 큰 나눔의 행복을 느껴왔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우리의 이웃들이 올해에는 조금 불편한 마음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이웃돕기 사랑의 성금에 진흙탕물을 뿌렸다. 사랑의 성금으로 술 먹고 춤추고 그것도 모자라 속주머니를 챙기는 후안무치한 행동이 들통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려운 이웃을 도와 달라고 국민들이 맡긴 성금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들이 자기들의 배를 채우는데 만 정신을 팔았다.

웅덩이에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웅덩이의 물을 다 말라 버리게 할 수는 없다. 모금회도 환골탈태하여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웃돕기성금이 어려운 이웃에 따뜻한 샘물이 될 수 있도록.

이를 위해서는 이웃돕기성금 모금 행렬의 줄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필요하다. 그러나 부처님에게 공양한 빈자(貧者)의 등(燈)은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았다고 했듯, 고사리 손부터 시작하여 땀에 젖은 서민들의 정성어린 성금으로 이어지는 풀뿌리 나눔 문화의 확산이 끝없이 이어져야 한다.

이웃돕기 사랑은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따뜻한 인정, 정다운 마음이어야 한다. 온정이야말로 한 겨울 추위를 녹이고 훈훈한 인정을 꽃피울 수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고 했다. 한 겨울 춥고 배고플 때가 제일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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