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학 충주여고 교장

며칠 전 어느 지면(紙面)은 '안보 위기 속 무당파(無黨派)가 40%를 넘었다'는 어느 여론 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여당도 야당도 싫어하는 국민이 한 달 전보다 무려 13.6%나 상승했고 특히 젊은층과 화이트칼라 측에서는 절반에 육박한다는 내용을 뒤달고 있었다.

보도의 논조는 무당파 증가를 우려하고 있으나, 안보 문제 등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일반적으로 무당파 증가가 그렇게 해롭기만한 것일까.

무당파에도 격이 있다. 운신을 위한 기회주의적 무당, 달관의 경지를 자처하는 고고한 무당, 당파의 유혹을 뿌리친 가슴 뜨거운 무당. 이 중에 가슴 뜨거운 무당은 얽히고설킨 난국(難局)의 실마리를 풀어낼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일 수 있다.

왜 무당파가 양산되는 것일까. 국회의 난투 장면에 익숙해진 서민들은 이제 몇 사람 죽어나간다면 모를까, 실리 챙길 건 다 챙기는 그들의 행태를, 자기 지지자들에게 보이기 위한 쑈의 한 스테이지로 보는 경향이 짙어졌다. 하고 많은 사안(事案)마다 어쩌면 그렇게도 지지(支持)와 반대가 줄기찬지, 차라리 그런 뉴스를 전하는 어나운서의 입이 아프겠다 싶을 정도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4대강 살리기'만 해도, 여당은 '수질 개선 내지 홍수 방지용'이라고 설명하고, 야당은 '운하용으로서 4대강 죽이기'라고 주장한다. 진실은 하나일진대, 그렇다면 어느 한 쪽은 거짓임이 자명한 것 아닌가. 일을 추진하는 쪽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운하용이 아니라는 점을, 배를 갈라 내보이고, 반대편에서도 동의해 주는 페어플레이를 국민은 원한다. 우리 국민이 페어플레이어와 사꾸라를 구별하는 수준이 되었다고 인정한다면 말이다.

소백산맥 새재를 나란히 관통하는 국도 3호선과 중부내륙고속도로가 텅 빈 판인데, 그 고개로 배를 띄우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도대체 무슨 화성인(火星人) 같은 발상이냐고 놀라면서 걱정했던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정치다. '아니다, 기다'의 정략적 계산만으로 주문(呪文)처럼 되뇌이는 관행이 일상화 되니까 무당파가 생겨나는 것이다. 생각건대 세월이 화들짝 흘러가 과연 4대강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보고 싶을 정도다. 이제는 여든 야든 공동의 책임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자칫 공멸할 수도 있다.

한 해를 정리하는 섣달이다. 연평도가 피폭된 요즈음, 북한이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하는 등 핵무기 제조 능력을 과시하는 상황에서도 세모는 다가오고 있다.

대부분의 무당파들은 피폭이나 핵시설 보유 따위보다는 망년회가 의미 있을 것이다. 술도 한 잔 걸치며 지긋지긋한 정쟁(政爭)의 지저귐에서 멀어지고 싶으니까.

참, 말이 나온 김에, 방사능에는 술이 특효라는 믿거나 말거나한 어느 사례로 술 먹는 무당파의 무드를 잡아보련다.

일본 국세청 양조시험소 감정관을 지낸 사토 신 박사는 그의 저서 '술, 알고 마십시다'에서, 자기 벗 중 하나가 히로시마 원폭 피폭자이지만 워낙 대주가(大酒家)라서 약간의 화상 흉터를 제외하고는 아주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 또 나가사키에서는 원폭이 투하된 뒤, 궁지에 처한 어느 술집 주인이 지하에 묻어 두었던 소주 항아리를 파내 친한 친구들과 나누어 마신 것이 원인이 되어 그들 모두가 지금까지 건재하다는 것, 그리고 2차 대전 중 만주에서 뢴트겐 조작 실수로 대량의 방사선에 노출된 어느 기사(技士)가 그 양으로 보아서는 당연히 장애를 일으킬 정도였으나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는 것 등의 일화를 서슴없이 소개하고 있다.

핵과 술과 연말이 연결되니까 왠지 그로테스크한 기분이다. 이쯤되면, 고고하건 뜨겁건 무당파도 실은 가슴이 저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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