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홍 석 원 보은우체국장

오래전부터 아내가 경남 남해에있는 보리암에 가자고 성화다.

전에는 평일에 가끔씩 홀로 다니곤 하더니 이번에는 토요일에 간다고 함께 가자고 하며 보리암에 대해 설명을한다.

무심코 그러자고 했지만 차츰 날자가 다가오니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주에는 직장에 행사도 없고 특별한 용무도 없어 거절할만한 명분이없다 .

금요일저녁 내일가는게 맞냐고 엉뚱하게 물으니 아내의 반응이 쌩하면서 혼자 다녀온다고 은근히 엄포를 논다.

집나가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필자는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여행한 추억이 별로 없다. 여행이야기만 나오면 이다음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을 때 공직 은퇴후 실컷 다니자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터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심상치 않다. 안 따라갔다가는 가장으로서의 도리에 어긋나고 그동안 그나마 세워온 위상에 흠이 날 것 같아 겁이 덜컥났다.

동행하기로 마음먹고 먼저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모임장소에 나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서로들 반갑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오랫동안 정기적으로 다니는 사람들이구나 라는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인솔자가 인원파악을 하고 일정을 안내받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남자는 연세가 지긋하신 한 분 뿐이고 모두가 여자들이라 어색했다.

그런데 여느 관광차와는 달리 모두가 정감있고 편안함을 느끼게 하여주고 운전기사 역시 음성도 부드러우면서 종교에대한 믿음과 지식도 해박한 듯 하며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집에서 나올 때 차에서 잠이나 자면서 푹 쉬려고 마음먹었던 필자의 생각은 차가 출발하자마자 어긋나고 말았다. 서로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주며 이건 누가 어떻게 만든거고 건강에 좋은거라고 설명을하며 먹어보라고 권한다.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만드는 방법에대해 주인공이 설명하면 옆에 사람이 질문도하고 토론을한다.

한참하다 화제를 바꿔 자녀들 학업, 시댁 및 친정 식구들, 손자·손녀 보는 일, 가족들건강 등 다양한 우리 일상 생활 이야기를 고루 주고 받는다.

동행한 사람들의 대화내용을 들으면서 속으로 출발전에 마음먹은 휴식을 취하는 것 보다 의미있고 이게 바로 보리암에 가는 목적이고 삶의 체험 현장임을 실감케한다

종교에 대한 믿음이 깊지 않은 필자로서는 의식을 갖추어 하는 외형적 기도보다 생활속의 종교 즉, 행동하는 믿음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왔다.

서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주고 자기가 터득한 삶의 지혜를 이웃에게 알려주는 자체가 믿음이고 보시(布施)라고 확인되었다.

보리암에 도착하니 뿔뿔이 흩어져 각자 자기 방식대로 기도를하며 이곳 저곳을 다니며 하루를 즐기면서 보낸다.

금산 정상에서 상주해수욕장 등 남해의 섬 전체를 두루 감상하는 것은 마치 구름속을 보는 듯 환상적이었다.

보리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산인 쌍계사의 말사(末寺)로서 원효대사와 태조 이성계가 수도하였다고 하며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군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세음보살 성지로 꼽힌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는 차 안에서 불교에대한 방송을 들려주니 모두들 고단한지 기도하는 듯 조용하다.

얼마를가다 휴게소에서 정차했다. 여기서 또한가지 다른 것은 정기적으로 다녀서 그런지 휴식시간을 주면 절대로 늦게 오는 사람이 없어 시간낭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버스가 다시 출발하자 한 분이 운전기사에게 다가가 무얼 이야기하니 곧바로 음악이 나오기 시작한다. 고요하던 차안이 여기 저기서 손뼉소리가 나고 몸을 들썩거리다가 하나 둘 나가 체조를한다.

아마 장시간 여행으로 허리도 아프고 평소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으로 오늘 수행(修行)의 마지막 과정인가보다 생각하였다.

모처럼 아내와 함께 보리암을 다녀오면서 함께 동행한 여러 사람들에게서 나눔과 삶의 지혜에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많이 배운 것에 감사를 드리며 모두의 행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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