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한 병 선 교육평론가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체벌반대론자다. 체벌이 비교육적이란 사실을 늘 강조한다. 이런 강조는 나의 과거 '경험'과 '지적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매를 무서워한다. 어린 시절에는 매만 보면 자지러졌다. 그런데도 체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오해는 마시라, 내가 공부를 못해서, 혹은 품행이 방정(方正)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일상화된 체벌 속에서 나만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탓이다.

영어시간과 미술시간에는 슬리퍼로 맞았다. 타이어를 오려서 만든 슬리퍼였다.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진저리를 친다. 체육시간에는 몽둥이찜질을 당했고 교련(敎鍊)시간에는 군화발로 차였다. 열병과 분열연습을 하던 시간은 체벌이 더욱 집중되었다. 또 선착순 기합은 어찌 그리도 많았는지. 때론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집단적으로 맞는 경우도 흔했다.

군대에서의 폭력은 더 심했다. 좀 과하게 말하면 맞다가 제대한 기억밖에는 없다. 고참 대접을 소흘히 한다는 이유로, 식사가 늦는다는 이유로, 때론 중대 간 체육대회에서 졌다는 이유로 두들겨 맞았다. 체벌의식이 끝나야 하루가 마무리 되었으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렇게 체벌에 길들여져 갔다.

나는 체벌을 당할 때마다 다짐했다. 내가 고참이 되면 후임병들을 몽둥이로 다스리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또 다시 구타로 돌아왔다. 상병 고참이 되었을 때 이제 구타는 좀 면하겠거니 생각했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구타는 그대로 이어졌다. 후임병들을 교육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 잘 아는 사실이지만, 상병쯤 되면 선임들이 그랬던 것처럼 후임병들의 군기를 잡아야 한다는 집단압력이 작용한다. 이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구타의 빌미였고 죄목이었다. 나는 다시 선임병들에게 끌려가 어금니에 금이 가도록 얻어맞았다. 집단폭력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문화의 그 방식대로, 그들의 요구대로 체벌을 그대로 후임병들에게 대물림 시켰더라면 나의 어금니는 온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언젠가는 사라져야 할 악습이란 사실을 알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비인간적인 구습을 더 이상 대물림 시킬 수는 없었다. 이것이 내가 체벌반대론자가 된 첫 번째 이유다.

체벌이 비교육적이란 사실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다. 이는 교육학자들, 교육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체벌은 본질적으로 폭력과 두려움에 근거한 복종을 내면화시킨다는 점, 인격적 관계의 형성을 어렵게 한다는 점, 나아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다.

사회학습이론에 의하면, 체벌은 공격적 모델링과 자기강화를 통해 확대·재생산된다.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방해하며 민주적인 대화와 소통을 어렵게 한다. 또한 인간성을 파괴시킨다. 오리건사회학습센터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고하고 있다.

이 센터의 디가모 박사는 체벌에 의한 강압적 방식이 더욱 반항적인 행동을 낳는 반면, 비강압적인 양육방식은 순응적인 행동을 낳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반사회적 범죄의 대부분이 체벌과 관련이 깊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런 점에서 체벌에 기대야 할 상황이라면 차라리 놔두는 쪽이 훨씬 교육적, 친사회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병선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다. 체벌하지 않는다고 문제아가 되고 버릇없는 아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사회적 자습(自習)능력'과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자성(自省)능력을 지닌 존재들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스로 성장하면서 달라지게 된다는 것, 나의 지적 신념은 바로 이런 맥락이다. 체벌반대를 부르짖는 두 번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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