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이광복 청주율량중 교감

제주의 길이 특색있게 디자인되어 명품으로 태어났다. 올레길을 시작으로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에 등장한 지리산 둘레길이 전국민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충남 솔바람길, 무등산 옛길 등 곳곳이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길'을 만들어 내기에 한창이다. 충북에도 괴산의 '산막이 옛길'이 지역민의 사랑을 받는 길로 새 단장을 하였으며, 한강의 물길이 열려있던 곳이고, 계립령길, 새재길, 이화령길, 죽령길 등 여러 고개의 길목으로 길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충주에서도 이러한 길의 바람 속에 새로운 소통의 문화를 열어 가길 기대해 본다.

길이 세인의 주목을 받는 것은 이제 스스로를 돌아보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공부하는 아이도, 어른도 모두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는데 드디어 잊고 있던 스스로를 되돌아 볼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싶은날 남한강변에 자리한 역사의 길을 떠나보자.

길의 시작은 충주 탄금대에서 강을 따라 내려가며 보는 것이 좋다. 탄금대에는 가야금을 탄다는 지명을 남긴 가야의 망명객 우륵, 임진왜란 충주에서 왜군과 전투를 치룬 신립, 감자꽃 항일 시인 권태응 등 많은 이야기를 건네주는 역사의 인물이 오솔길마다 자리하고, 길이 강을 만날 때쯤에는 삼국시대의 토성이 작은 언덕을 이루며 찾는 이를 반긴다. 탄금대에서 충주 쪽으로 난 넓은 들은 신립이 왜군과 전투를 벌였던 전적지이고, 길에서 조금 떨어진 밭 가운데에는 청동기 시대 족장의 무덤인 고인돌이 한기 놓여 있다.

탄금대 아래 쪽 호수에는 길이 강을 건너느라 대역사가 진행 중이다. 왼쪽으로 보이는 산에는 이제는 폐광이 된 충주의 철산지가 자리 잡고 있다. 삼국시대 이후로 충주가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 철산지와 물길과 고갯길의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철은 국력을 상징하는 산물이었다. 가야가 소국이면서도 부강한 나라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도 철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수와 만나는 산모롱이 안에 이 고장 전통 명주인 청명주가 익어가는 집이 있고, 그 마당에 고려시대의 조촐한 석탑과 석불이 서 있다. 여기서 작은 도랑을 건너면 호숫가 바위벽에 선각을 한 마애불과 마주하게 된다. 이 마을에 있는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면 제법 산다운 산이 마주 보이는데 이곳이 신라 귀족의 무덤이 있는 누암리 고분군이다. 워낙 도굴이 많이 되어 부장품들이 많이 발굴되지는 않았지만 신라의 역사가 중원의 땅에서 어떻게 펼쳐졌는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고분군을 내려오면 장중하면서도 빼어난 자태를 지닌 탑이 호숫가에 서 있는데, 이 탑이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중앙탑이다. 탑은 높은 기단 위에 올려져 있어 하늘에 닿을 듯 상승감이 느껴지는데, 크기 때문인지 범접하기 어려운 위압감을 강하게 전해준다. 주변은 절터였는데 절이 지어졌을 때에는 저만치 강이 물러나 더 맑은 빛을 띠고 있었고, 물새는 강가 억새 사이로 물고기와 숨바꼭질을 하였을 것이다. 댐이 생기고 탑 아래까지 물이 찰랑이면서 탑 주변에는 공원이 조성되었다. 강물이 풀리고,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면 탑 주변은 금새 사람들로 가득해진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 중앙탑 공원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충주는 발길 닿는 곳이 모두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뜨거운 가슴으로 역사를 마주하고 싶을 때 충주로 길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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