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김 전 원 전 청주교육장

12월은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중요한 달이다. 새해엔 후회하지 않는 한해가 되도록 열심히 살겠다고 힘차게 솟아오르는 태양을 향해 소리 높여 다짐했지만, 연말의 반성 순간엔 또 다른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나를 포함한 많은 우리가 그렇게 한해를 보내고 또 한해를 맞고 있다.

팔질을 훨씬 넘긴 내 장형이 아주 건강하게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뇌경색이 일어 언어장애와 오른쪽 마비로 팔년 가까이를 고생했는데, 주치의도 이젠 생이 경각지간이란다. 소생일념으로 투병했지만, 어쩌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그동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말은 얼마나 많았을까.

며칠 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연히 대학시절 은사인 원로 정치인 한분을 만났다. 설렁탕을 들면서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른다며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 잘 정리하라.'는 덕담을 주고서는 부산까지 가야 한다며 내 밥값까지 치르고 급히 떠났다.

일주일쯤 지나서 우연히 지난 신문을 뒤적이다가 휴게소에서 만났던 그 은사님이 그날 저녁 교통사고로 작고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아주 건강해 보여서 백수는 문제없을 줄 알았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싶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벌여 놓은 일도 많아 보였는데, 비명횡사 했으니 계획했던 일을 다 마무리 했을 리가 없다.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 잘 정리하라고 당부했는데, 내 빚은 어떻게 갚아야 할까? 우리 주변엔 이렇게 졸지에 예고도 없이 황당한 상황을 당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젊은이들은 자기도 그럴지 모를 거라는 생각은 않겠지만, 노년에 든 이들 중에는 죽음의 고통을 모르는 채 조용히 마감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단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적당한 시기라는 말도 있지만, 메뚜기도 여름이 한철이라고 더 늦기 전에 깨달아서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 들을 알차고 보람되게,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며, 당당한 일상으로 후회 없는 삶이 되도록 정진해야할 것이다.

농사도 시절이 있듯이 공부도 시기가 있고, 효도도 부모가 살아 계실 때 해야 하듯 베풀고 나누며 남기는 일도 살아 있을 때 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애 가운데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하겠다는 생활 습관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떤 이는 오늘이 자기 생애의 마지막 날이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빚을 남기지 않으려고 매일 매일을 아주 성실히 살아간다는데, 어떤 이는 벌여만 놓고 매듭짓지 못한 일을 걱정하다 눈을 뜬 채로 생을 정리했단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고, 이 시간이, 오늘 하루가, 한주가, 한 달이, 한철이, 한해가, 그리고 한 생애가 정리되고 있는데, 더 늦기 전에 기약 없이 흩어 놓은 마음의 빚을 하나하나씩 매듭지어 보자.

자신에게만 관대했던 일, 누군가를 미워하고 서운하게 한 일, 아직도 무겁게 지고 있는 마음의 빚, 감사할 일, 미제의 거래, 지키지 못한 약속, 공사간의 책무, 못 전한 말과 못 받은 용서, 오해와 상처 등 더 늦기 전에 풀어야할 일들을 말끔히 정리하는 것은 결코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정리를 하라는 것은 후회 없는 삶이 되도록 시기를 놓치지 말라는 충고일 것이다. 때를 지키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시기를 놓쳐서 겪는 낭패와 심신의 고통에 비교가 되겠는가.

존경받는 갑부는 피땀 흘려 모은 재산 피눈물로 고생 하는 이 들과 나눈 것이고, 존경받는 인류의 스승은 갈 길 몰라 방황하는 이 들의 등대가 된 것이며, 아기의 알몸이 당당한 것은 양친께 받은 은혜 베풀려는 순수함이란다.

늦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저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무의식 상태로 흘러가는 게 일반적이어서 이를 깨달았을 땐 늦을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밀려간다고 속절없이 합류하지 말고, 더 늦기 전에 내가 지금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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